[인터뷰] 손예진 "항상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연기를 꿈꿔요"

기사입력 2016-06-22 09:04


사진제공=퍼스트룩

더 깊어졌다. 그리고 더 짙어졌다.

영화 '비밀은 없다' 속 연홍을 연기한 배우 손예진의 이야기다.

17일 오후 서울 삼청동 카페 슬로우파크에서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제작 영화사 거미, 필름 트레인)의 주연 배우 손예진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신예 정치인 부부의 딸이 사라지면서 일어나는 15일 간의 이야기를 그려낸 미스터리 스릴러물. 손예진은 딸의 실종 이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아내 연홍 역을 맡았다.

연홍은 딸의 실종을 맞닥뜨리는 상황 속, 단아하고 정숙한 정치인의 아내에서 광기가 느껴지는 모성으로 가득 차게 되는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영화 속에서 손예진은 연홍이라는 옷을 제대로 입은 듯 했다. 그는 이경미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뒤틀린 세상에 사는 비정상적인 모성을 가진 여성상을 매력적으로 담아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정말 술술 읽히더라고요. 서사의 반전이랄지 다른 작품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어요. 계속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느꼈고 뒷 이야기가 점점 더 궁금해지고요. 시나리오 읽고 나서 작품 결정도 빨리한 편이에요."


하지만 그녀에게도 이번 작품은 쉽지만은 않았다. "역할이 역할인 만큼 정말 장면마다 편한 씬이 없었어요. 연홍의 캐릭터 상 딸을 잃은 뒤 점점 비이성적으로 변하는 모습을 그려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생각한 연홍과 감독님이 구상하신 연홍의 접점을 찾는 게 어렵더라고요. 연홍이라는 인물이 전형적인 모성애를 지닌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수를 읽을 수 없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과연 연홍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를 정말 깊게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조금씩 연기를 해가면서 그 접점을 찾았을 때 저도 묘한 재미를 느끼게 됐어요."


'비밀은 없다' 속 연홍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개봉 전 부터 관객들 사이 2016년 가장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라는 기대평을 듣고 있다. 요즘 영화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여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다, 장르 역시 쉽지 않은 미스터리 스릴러물.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킨 것은 배우 손예진이 가진 힘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손예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단연 청순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그가 만들어 온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청순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이미 배우인생 15년 차. 그 동안 배우로서 성장해오면서 그녀에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아직까지 제 전작들에 대한 추억을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너무 감사한 일이죠. 그 영화들을 찍을 당시보다 지금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시점에서 '그 작품들이 참 소중했구나'를 더 느끼게 돼요. 일부러 청순한 이미지를 벗어내려고 한 건 아니예요. 그 동안 저의 보여지지 않은 모습들을 보여줌에 있어 달라진 게 있다면 경험의 차이겠죠. 예전보다 시야가 넓어졌고, 흥미를 느끼게 되는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한 것 같고요."


그렇게 더 깊고 넓은 세계를 품게 된 배우 손예진은 중학교 3학년짜리 딸을 잃어버린 엄마, 연홍이라는 캐릭터에 어떻게 다가갔을까? "제가 연홍에게 느낀 가장 큰 감정베이스는 모성이었어요.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어요. 저도 여자고 딸이기 때문에 엄마가 저에게 느끼는 감정들을 담고자 했죠. 또 친언니가 결혼해서 조카가 있거든요. 전 아직 엄마가 되어보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간접경험으로 느낀 감정,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런 감정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만 표현할 때는 또 새롭고 독특한 캐릭터로 그려내기 위해서 노력했고요.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표현, 그리고 흔히 상상할 수 없는 엄마로 그려내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어떻게 보면 그래서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기도 해요."

사실 틀에 박힌 연기, 잘 할 수 있는 역할만 선택하는 배우들도 있다. 하지만 손예진은 다르다. '믿고 보는 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여배우는 그 동안 꾸준히 쌓아온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가지고 작품을 선택하는 폭을 넓히고 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연기에 대한 열정을 작품 안에 오롯이 쏟고 있다. 그렇게 연기를 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갈망도 점점 짙어진다는 손예진. "배우라면 누구나 그런 열망 있거든요. 더 지독한 연기를 꿈꿔요. 설경구 선배님을 만나도 그렇고 다른 선배 분들도 그런 얘기를 하세요. 아주 고통스러운 연기를 하고 나면 저 스스로도 '그래 고생했어' 라는 얘기를 비로소 할 수 있거든요. 그런 기회들이 많이 주어졌으면 하고요. 스스로 만족하는 거죠. '고통을 즐긴다' 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우라면 그 고통도 즐길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손예진은 고통을 즐길 수 있었던 '비밀은 없다'를 자신의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라고 명명했다.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큰 터닝포인트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애소설', '클래식', '내 머리 속의 지우개'로 이어지는 청순 가련한 역할에서 '작업의 정석'으로 새로운 도전을 했었고요. '해적'에서도 액션연기, 센 역할에 도전했다는 면에서 저에게는 새로웠죠. 항상 작품을 선택할 때는 흥행여부보다 그 시점에서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영화 역시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어요. 또 하나의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그렇게 필모그래피에 또 하나의 인상적인 발자국을 남긴 손예진. 이제 남은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는 오는 23일 개봉한다. <이한나 스포츠조선 뉴미디어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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