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허진호 감독 "10년만의 충무로 귀환, 덕혜 심정과 같다"

기사입력 2016-08-10 09:45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허진호 감독이 돌아왔다!" 배우 박해일이 영화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호필름 제작) 시사회에서 내뱉은 강렬한 외침이다. 그렇다. '덕혜옹주'는 허진호(53) 감독의 기대하고 고대했던 부활탄이었다.

데뷔작이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98)로 충무로의 독보적인 로맨스 메이커가 된 허진호 감독. 단 한 편으로 '허진호표 로맨스' 열풍을 몰고 온 그는 이후에도 '봄날은 간다'(01) '외출'(05) '행복'(07) 등 특유의 서글프고 서정적인 연출색으로 충무로의 획을 그었다. '허진호=멜로'라는 공식이 성립될 정도. 무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이러한 허진호 감독의 작품은 관객에게 '인생 멜로'로 꼽히고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그런데 세상이 변한 것일까? 허진호 감독이 변한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허진호 감독의 사랑 이야기들이 관객의 마음을 울리지 않았다.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봄날은 간다' 같은 작품은 없었다. 대신 대륙의 향기가 물씬 나는 향신료 가득한 대륙형 멜로가 이어졌다.

2009년 한중합작으로 제작된 영화 '호우시절'을 기점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허진호 감독. 시도는 좋았지만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국내 톱스타 정우성과 중국스타 고원원을 내세운 멜로였지만 고작 2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허진호 감독의 첫 번째 위기였다.

이후 2012년 다시 한번 중국과 손잡은 그는 장동건과 장백지, 장쯔이 등 초호화 라인업으로 관능의 멜로인 '위험한 관계'를 선보였다. 제65회 칸국제영화제, 제37회 토론토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초반 화제를 모았지만 이 또한 기대했던 '허진호표 멜로'가 없자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전작처럼 29만명에 그치며 흥행에 실패한 것.


충무로에서 허진호 감독이 잊힌지 7년, 제작 준비까지 더한다면 10여년이다. 그동안 허진호 감독의 아성을 위협할 또 다른 로맨스 메이커들이 나타났고 새로운 로맨스들도 숱하게 등장했다. 그럼에도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를 뛰어넘을 명작은 없었다. 허진호 감독이 절실해진 순간, 기적처럼 '덕혜옹주'를 들고 컴백했다. 최대 무기인 정통 멜로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의 색깔이 곳곳에 묻어난 시대극이었다. 단언컨대 그의 부활탄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한국영화를 촬영한 지 10년이 넘었어요. 마지막 개봉이 2007년 '행복'이었으니까요. 그동안 충무로가 그리웠어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데, 다행히 관객은 안 변한 것 같네요(웃음). 덕혜옹주도 조선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의도하지 않았는데 오래 걸렸네요. 확실히 국내 영화를 만드는 게 마음이 더 편하더라고요. 시대극이라 전작들보다 더 많은 수고와 공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국내 작품을 한다는 것만으로 마음의 편안함이 오죠. 조국으로 돌아온 덕혜옹주의 기분, 전 알 것 같아요. 저도 돌아왔습니다. 조국에. 하하."


사실 허진호 감독은 '덕혜옹주'를 꽤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위험한 관계'를 제작할 당시부터 '덕혜옹주'에 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어쩌다 보니 7년이라는 세월이 걸리게 됐다. '덕혜옹주'가 오래 걸린 이유는 간단했다. 덕혜옹주는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도, 독립운동가도 아니었기 때문. 게다가 굉장히 수동적인 인물이었던 덕혜옹주는 드라마틱하고 다이나믹한 전개가 필요한 영화라는 수단에 부적합했다. 당연히 투자가 녹록지 않았고 여러 차례 제작이 무산됐다. 그렇지만 허진호 감독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분명 자신이 느꼈던 덕혜옹주의 삶이 관객의 심장을 관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권비영 작가의 동명 소설에 완전히 빠졌어요. 덕혜옹주를 둘러싼 여러 인물과 덕혜옹주 내면에 대해 깊이 고민한 흔적이 드러난 작품이었죠.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만큼 영화화됐을 때 관객을 움직일 수 있는 접점이 있을 거라 믿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덕혜옹주'를 조명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거기에서 영화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대신 덕혜옹주를 독립투사, 영웅처럼 역사를 왜곡해 그리고 싶지 않겠다 다짐했어요. 당시 아이돌처럼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옹주였는데 일본에 끌려가면서 변해버린 모습이 가슴에 박혔어요. 마지막엔 정신병을 앓을 정도로 비극적인 인물이었는데 이런 비극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죠. 우울한 영화가 아닌 해피엔딩을 꿈꾸면서요(웃음)."


여러모로 의미를 갖는 '덕혜옹주'. 마케팅 카피처럼 잊힌 덕혜옹주의 존재를 다시금 세상에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허진호 감독 자체에도 터닝포인트를 맞게 됐다.

"영화를 만들고 개봉하면서 이렇게 큰 시장에 뛰어든 게 처음이에요. 늘 늦가을 개봉을 해왔는데 이렇게 극장가에 관객이 몰리는 여름 성수기가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져요. 반대로 조금의 기대가 생기기도 하고요. 하하. '덕혜옹주' 개봉 시기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아무래도 서정적인 분위기 때문에 여름보다 가을이 더 어울린다는 의견도 많았고요. 배급 시기는 연출자가 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어찌 됐든 여름 성수기에 출사표를 던진 만큼 우리의 진심이 많은 관객을 울리길 바라고 있죠. 박해일이 말했던 것처럼 '덕혜옹주'는 이열치열할 수 있는 영화니까 무더운 여름 뜨거운 감동으로 이기셨으면 좋겠어요. 하하."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외출' '호우시절' '덕혜옹주'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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