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를 논하다③] '쓰랑꾼' 유지태, 13년만에 이우진을 넘어서다

기사입력 2016-08-27 10:31



[스포츠조선 배선영·조지영 기자] 차분하고 낮은 중저음, 그리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얼굴을 가진 유지태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한 사람이다. 온몸이 노근노근 녹아내리는 온탕 같다가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보면 뼛속까지 시린 냉탕 같은 무서운 반전이 도사리는 배우. 종잡을 수 없는 그가 이번엔 '쓰랑꾼(쓰레기+사랑꾼 합성어)'으로 또 하나의 인생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188cm의 훤칠한 키를 가진 유지태는 1997년 모델로 데뷔해 활동하다 이듬해 1998년 영화 '바이 준'(최호 감독)으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그는 당시 친구의 여자를 사랑하는 방황하는 청춘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이를 발판으로 연기, 영화에 빠졌다. '바이 준' 이후 유지태는 1999년 개봉한 '주요소 습격사건'(김상진 감독)을 차기작으로 선택, 전위적인 누드를 즐겨 그리다 정작 자기 인생의 밑그림도 못 그리는 기이한 화가 뻬인트 역으로 강렬한 존재감을 남겼다. 충무로의 감독들로부터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한 그는 멜로 영화 '동감'(00, 김정권 감독) '봄날은 간다'(01, 허진호 감독) 등을 통해 '멜로킹'으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모두 유지태 이름 석 자를 알리데 큰 공을 세운 작품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인생 최고의 작품인 '올드보이'(박찬욱 감독)가 유지태의 손에 쥐어졌다. '올드보이'에서 유지태는 누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오대수(최민식)를 15년간 감옥에 감금, 복수극을 펼치는 인물 이우진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데뷔 이래 첫 악역으로 선과 악이 어우러진 유지태의 매력이 응집된 '인생 캐릭터'다. 소름 끼치는 악역으로 변신한 유지태는 언론과 평단의 극찬을 한몸에 받으며 충무로 최고의 스타로 등극했다.


한 단계씩 차분히 계단을 밟아가며 정성스레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는 '올드보이' 이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04, 홍상수 감독) '야수'(05, 김성수 감독) '가을로'(06, 김대승 감독) '황진이'(07, 장윤현 감독) '심야의 FM'(10, 김상만 감독)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14, 김상만 감독) 등 장르 불문, 캐릭터 불문 꾸준히 새로운 한계에 도전했다. 배우로서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공을 들인 그는 동시에 연출자로서 역량도 키웠다.

2003년 단편영화 '자전거 소년'을 통해 연출 도전에 나선 그는 2005년 '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 '나도 모르게', 2009년 '초대' 등 네 편의 단편을 만들었고 2013년 첫 장편 영화 '마이 라띠마'로 감독 데뷔에 성공했다. '마이 라띠마'는 제15회 도빌 아시아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는데 전 세계 영화인들로부터 배우가 아닌 감독으로서 연출력을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대중에게 유지태는 늘 '올드보이'의 이우진으로 기억됐다. '올드보이' 이후 작품들이 작품성에서는 인정을 받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기 때문. 13년간 '올드보이' 유지태로 남게 됐고 이를 극복할 역대급 변신이 필요했던 순간, tvN 금토드라마 '굿 와이프'(한상운 극본, 이정효 연출)를 만나게 됐다. 그는 '굿 와이프'에서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잘 나가던 검사이자 혜경(전도연)의 남편 이태준으로 변신, 지금과는 또 다른 캐릭터로 신선함을 안겼다.

그가 맡은 이태준은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장 검사다.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불법적인 방법도 불가피하다 생각하고, 대의를 위해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정의라 믿는 남자로 등장하는데 아내 혜경 역시 자신의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초반 매춘부와 성 스캔들로 인해 혜경과 위기를 맞는 이태준이지만 중반부 혜경과 관계에서 변화를 맞으며 다양한 감정을 선보인다.

이런 이태준의 모습에 시청자는 '쓰랑꾼'이라는 애칭을 붙여준 것. 유지태는 이런 '쓰랑꾼' 이태준을 자신만의 색깔과 감성으로 꾸며 매력 있는 캐릭터로 빚어내며 13년 만에 '인생 캐릭터'를 업그레이드시켰다. '쓰랑꾼' 이태준으로 '올드보이' 이우진을 넘어선 2016년이다.

sypova@sportschosun.com·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스포츠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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