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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타이거JK(본명 서정권)는 한국 힙합씬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국내 힙합뮤직의 역사 20년에서 드렁큰타이거의 지분이 18년인 것만 봐도 그렇다. 단순히 두 자릿자 숫자가 갖는 묵직한 의미를 차치하더라도 그의 8장 음반은 힙합씬을 호령한 결과물이자, 장르음악의 대중화를 알린 신호탄과도 같았다. 1999년 세기말에 등장한 드렁큰타이거의 첫 인상은 그야말로 술취한 호랑이였다. 그가 다시 '호랑이가 랩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드렁큰타이거의 지난 8장의 앨범은 그의 삶에 대한 녹록치 않은 기록이다. 척수염을 앓고 소속사와의 분쟁 등 순탄치 않은 고통의 기간을 보내면서도 타이거JK는 직진했다. 그리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힙합이 대중의 음악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의 터전은 의정부 집이다. 이 곳에 녹음실을 꾸리고 음악의 가치만을 쫓는다. 음악인생 2막을 활짝 열 준비도 마쳤다. 아내 윤미래와 동료 래퍼 비지와 함께 꾸린 그룹 MFBTY 활동은 물론, 래퍼 도끼와 지난해 후배 양성을 위해 설립한 레이블 굿라이프크루까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도 이어갈 계획이다.
술 취한 호랑이가 다시 신들린 음주 래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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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힙합의 장르 안에서도 시도가 다양해지고 대중에 친숙한 음악이 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가 뜨면 우르르 몰려가서 똑같은 걸 하는 건 안타깝다. 힙합하면 남을 헐뜯는 디스, 돈 자랑을 떠올리는 것 말이다. 그 외의 가치있는 것들이 또 다른 것들에 묻히면 안된다. 지금은 크게 성공한 도끼도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시작해서 그렇지, 엄청 오랜 기간 고생했다. 어린 나이게 성공해서 오해의 시선도 있는 것 같은데, 무엇보다 진정성이 중요하다. 겉으로만 보이는 것에 열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요즘 힙합음악과 예전을 비교한다면.
예전엔 무브먼트 크루, YG패밀리 등 힙합 안에서도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마니아 팬들의 토론도 건설적이었고 성장하는 문화 자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한 단어인데도 5개의 중의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숨은 뜻을 일부러 배치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음악을 해석하고 신호를 분석하는 게 즐거웠는데 그런 점들이 사라져가는 것은 좀 아쉽다. 하지만 유튜브 등 정보가 워낙 빠르고 시대도 바뀌었으니 변하는 건 당연하다.
- 처음 음악을 시작하던 때, 드렁큰타이거의 초창기 시절도 많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땐 전곡 금지 판정은 당연했고, 노래에 랩만 있으니까 CD가 잘못 구워진 것 아니냐고 말할 정도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너희들은 절대 성공못한다'고 늘 말했던 시기였다.(웃음) 모두가 안된다고 하니까 더 오기가 생겼던 흥미로웠던 시간들, 당시에는 창작 자체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6집 부터는 제대로 곡을 만드는 것 같다고 스스로 느꼈는데, 뭔가 찾고 퍼뜨리고 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 어쩌면 9집은 내게 3집에 해당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레이블을 설립해 슈퍼비와 면도, 주노플로 등 후배 래퍼들을 식구로 들였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내가 배우는 게 많다. 자신의 철학이 뚜렷하고 어느 하나에 몰두하고 반응하는 게 신기해 보였다. 모두가 랩 괴물이고 확실히 스킬적으로 잘한다. 공연장에서 확실히 이 친구들의 진가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다들 큰 회사에서도 제안을 받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단 의지만으로 함께 하게 됐다. 고맙다.
- 엠넷 '고등래퍼' 출연 등 방송 출연한다는 소식도 많다.
긴 잠에서 좀 깬 기분이다. 이제는 방송도 하고 싶은 시간이 됐다. 마음의 준비가 된 느낌 말이다.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내 주위의 선후배들을 보면서 결국 내 자리를 찾은 것 같다. 아무 생각안해도 되는 예전의 내가 된 것 같다. 결혼하고 아빠가 되면서 중요한게 중요하지 않게 되고 모든 시각과 철학도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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