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열 여덟번째 주인공은 새로운 스타일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제안하는 헤어 아티스트 태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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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태양이 느꼈던 회의감은 바로 직업에 대한 정체성으로부터 온 것이다. 단순히 손님의 머리를 만져주고 돈을 받는 장사치 또는 기술자가 아닌 고객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그 시간만큼은 함께 공유하며 아티스트의 열정을 불태우는 것. 그 물음에 대한 더욱 명쾌한 해답을 찾기 위해 태양은 미국행을 결심했고 몇년 후 가버트 아틀리에(Gavert Atelier) 헤어 살롱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할리우드 럭하드 필름 스타일리스트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현지 방송 및 각종 헤어 쇼에 러브콜을 받으며 그만의 스타일을 굳혀나갔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가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선보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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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태양(이하 태): 살롱 디 아티스트는 후배들을 위한 공간이에요. 10년 가까이 청담동에 자리 잡고 있는 헤어숍에서 직원 생활을 했었습니다. 방송이나 화보 촬영으로 외부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무엇보다도 아티스트적인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숍을 운영하게 되면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잖아요. 어시스턴트 시절부터 쭉 저를 도와주며 태양의 스타일대로 헤어를 배우던 친구들은 청담동 교육 시스템을 거친 타 디자이너들과는 분명히 다른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그들이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일 할 수 있는 스튜디오를 만들어주자. 그렇게 탄생한 곳이 살롱 디 아티스트입니다.
공간의 제약이 없었다면 청담동에 숍을 오픈했을 거예요. 지금은 프라이빗을 중요시 여기는 시대인데 조그만 숍 안에서 고객들이 좁게 붙어 있는 모습이 늘 아쉬웠거든요. 고객에게 충분한 휴식을 선물해줄 수 있고, 헤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곳이 적합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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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이에요.
▶태: 공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도록 중점을 뒀습니다. 때때로는 그림 전시도 하고 공연도 열 계획이에요. 천장을 높게 잡은 이유도 그 때문이죠. 어제도 김혜수 씨가 친구와 함께 이 공간에서 샴페인도 마시고 한껏 즐기다 갔어요.
-살롱 디 아티스트에 오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멋지네요. 소품부터 인테리어 하나하나 태양의 손길이 안 뻗친 곳이 없다고 들었어요. 원래 이쪽으로도 관심이 많았나요?
▶태: 아마 공부를 잘했던 아이였다면 지금 나는 건축가가 되어있을지도 몰라요(웃음).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그런 예술적인 분야로 두각을 보였다고 해요. 사진을 찍어 현상을 해도 구도적인 면, 구조 또는 공간의 컬러에 눈이 먼저 가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지금의 직업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보면 '어떻게 커팅 해야 할까', '컬러는 어떤 식으로 그러데이션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해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게 제일 먼저 눈에 띄어서 말이에요. 영감도 패션지보다 건축물이나 리빙에 관련된 책자를 보며 얻습니다.
-본래 조경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태: 네. 지금도 취미로 집이나 살롱에 조그만 가든을 만들거나 조경을 설치해 자연으로부터 오는 기쁨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어떻게 헤어를 접하게 되었나 물으니) 고등학생 때 아주 멋쟁이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 손을 보시더니 아주 곱다며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헤어 디자이너를 추천해주셨어요. 내 손끝에서 오는 감성을 전해주면 대단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로 동네 미용실 아줌마 옆에서 보조하고, 유명한 숍은 들어가질 못하니 유리창 밖에 몇 시간씩 서서 디자이너가 어떻게 머리를 하나 유심히 바라보곤 했어요. 그걸 몇 년을 했죠. 그 당시 남자가 미용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보수적이었겠어요. 더군다나 아버지가 교직에 계셨는데 반대도 없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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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신났겠어요.
▶태: 굉장히 바빴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예술적인 감각이 이게 다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은 국내에서 해외 아티스트를 초청한 세미나가 열린다기에 오만 원을 주고 티켓을 끊어 보러 갔어요. 전혀 감동스럽지 않았어요. 당시 국내 미용계가 지금보다 발전해 있지 않았기에 좋은 아티스트가 오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가 내 기술을 좀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 돈을 주고 이 사람의 티켓을 사서 봐야 하나. 이유가 뭐지?' 나의 현주소에 대한 물음이 생긴 겁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 배우긴 배워야겠고, 또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서로 교차했어요.
계기가 생겨 다른 미용실 원장님들이랑 세미나 겸 관광을 떠났는데, 그때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곳에 간 거예요. 관광은 눈에 안 들어오고 미국의 헤어숍에서는 어떻게 일을 하는지에만 눈길이 갔습니다. 한국은 손님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주기만 한다면, 그곳은 아주 대등한 관계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함께 디자인을 해나가더라고요. 순간 미용사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죠. 세계 제일의 아티스트들이 모인 곳에서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려면 일단 이 거대한 국가에 있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에 바로 결심했어요. 한국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국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LA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죠.
-미국 LA, 어떤 삶이었나요.
▶태: 미국 미용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영어 공부도 틈틈이 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부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버리힐스의 미용실 창가 속 디자이너들의 손을 하염없이 봤죠. 언젠가 저 자리에 서서 나를 꿈꾸는 사람이 생기도록 하겠다는 목표와 함께(웃음). 정말 열심히 했어요. 취직을 하고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할리우드에서 뮤직비디오도 찍어보고, 미국 방송국 ABC 토크 쇼에도 출연해보고 또 뉴욕 국제 미용 박람회(IBS New York) 메인 스테이지에도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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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한국이 그리웠어요. 식습관을 비롯해 문화적인 모든 것이. 미국에서도 한국의 드라마를 즐겨 봤었는데 출연 배우들의 헤어를 좀 더 멋스럽고 품위 있게 만들어주고 싶더라고요. 그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지요. 한국에서 그동안 익혔던 기술, 따끈따끈한 헤어 트렌드 또 무엇보다도 헤어 아티스트의 자유로움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태양이 말하는 아티스트의 자유로움이란 무엇인가요.
▶태: 아티스트의 자유로움이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느꼈던 고객과 대등한 위치에서 경직되지 않고 자유롭게 원하는 바를 펼치는 것을 말합니다. 미국에 있을때 또 하나 크게 놀랐던 것이 커트를 반 남겨두고 손님의 머리를 더 이상 만질 수 없다는 헤어 디자이너를 봤을 때에요. 커트를 하는 내내 손님의 예민한 컴플레인이 끊이질 않자 담당 디자이너가 하는 말이 "나의 실력이 모자라서도 아니고 당신이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행동이 아닌 것도 잘 안다. 우리가 사전에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영감과 당신의 요구는 너무나도 다른 길로 가고 있다. 최종 마무리를 보기도 전에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에너지 소모도 너무 심하고 우리의 만남이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을 것 같다"며 손님을 보내더라고요. 너무나 친절하고 공손했죠. 노동자 개념이 아닌 자유로움 속에서 고객과 디자이너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져야 하는 겁니다.
사실은 헤어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거예요. 어긋나면 누군가의 증오를 받으며 살아갈 수도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디자이너들도 너무나 잘 알아요. 또 과정보다는 결과물이 먼저 보이게 되는 것이 당연하고요.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있어서 혹여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하더라도 인간적인 상처만은 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어떨 땐 참 슬프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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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 한국에 와서 나를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경로가 잡지나 방송이었어요. 2011년 온 스타일 '패션 오브 크라이'에 누군가의 대타로 합류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일반인의 스타일을 전체적으로 체인지 해주는 콘셉트였어요. 한마디로 쇼킹이었나 봐요. 방송이 나가고 손님들이 너무 많이 밀려들어서 다 받지도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뭔가 지금의 모습에서 탈피하고는 싶은데 용기를 못 내고 있었다가 누군가가 당당하게 변한 모습을 보고 도전하는 거예요. 당시 매직기로 헤어를 쫙쫙 펴거나 아이론으로 동글동글하게 세팅하는 것이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보였고 또 모두들 검정 머리를 고수해서 패션까지 우중충해지는 모습에 좀 바꿔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동양인들의 검정 머리가 참 예쁘긴 하지만 저마다 눈동자 색상도 제트 블랙부터 브라운까지 굉장히 다양하고 그에 맞는 섬세한 컬러가 따로 있는 거거든요. 시크한 매력도 좋지만 좀 내추럴하고 부드러운 모습도 연출할 수 있도록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고 집중을 했어요.
검정 머리를 다른 색으로 바꾸는 작업만 수천 번을 했던 것 같아요. 특히 블랙으로 염색한 머리를 밝게 만드는 것은 굉장히 힘들거든요. 햇빛에 나가서 눈동자 색을 확인하고 피부와 얼굴형 목선에 맞게 컬러링 하는 것을 수 없이 반복했습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이 좀 더 퍼스널 컬러에 관심을 가지고 헤어 컬러를 선택하고 또는 과감한 변신에 도전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참 좋아요.
-헤어 트렌드는 어떻게 변화할 것 같나요.
▶태: 그동안은 좀 힘을 많이 푸는 느낌으로 헤어를 연출해왔죠. 일부러 묶었다가 푸는 느낌으로 머리카락을 손으로 비비고 심지어 방송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위해 스타킹을 이용한 적도 있었죠. 침대에서 방금 일어난 듯한 부스스한 느낌의 배드 헤어(Bad Hair)에서 이제는 며칠 머리를 감지 않은 듯한 오일리한 헤어가 유행이에요. SBS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홍진경 씨가 보여줬던 홈리스 헤어까지 가진 않겠지(웃음). 그게 아니라면 내추럴의 시대는 끝이 난 거예요. 앞으로는 좀 더 럭셔리하게 갈 것 같은데요. 볼륨감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찰랑거리는 1930년대 살롱 문화의 세팅된 머리가 다시 돌아올 것 같습니다. 아키택트적인 느낌으로 말이지요.
태양이 김혜수와 함께 작업한 BDA 화보 촬영장 |
▶태: 지금도 원장, 대표라는 호칭보다는 태양쌤이나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게 좋아요. 선생님으로 남고 싶고 또 그것이 아티스트로 살아 숨쉰다는 느낌을 주니까요.
dondante14@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