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어디인가'-연극 '맨 끝줄 소년'(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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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 분)은 항상 교실 맨 끝줄에 앉아 있는 클라우디오(전박찬 분)의 작문 숙제에 흥미를 느낀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그의 작문에는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에 대한 수상한 관찰과 친구의 엄마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 담겨 있다. 헤르만은 소년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점점 더 소설적 완성도와 매력적인 전개-이를테면 갈등의 고조-를 주문하고, 클라우디오는 이를 차근차근 실천에 옮긴다. 허구(소설)가 현실의 재현을 넘어 현실을 변형하고 새로운 상황을 창조한다. 그럼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뒤집는다.
책상과 탁자 4세트만을 활용한 단순한 무대는 곧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실의 맨 끝줄은 모든 이를 볼 수 있으면서 자신은 숨을 수 있는 곳이다. 허구와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상징한다.
2015년 초연에 이어 다시 '맨 끝줄 소년' 역을 맡은 전박찬은 모노톤의 발성에 집요한 욕망, 순수와 가식, 기쁨과 좌절 등 상반되는 요소들을 절묘하게 녹여, 흔치 않은 신비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드라마의 밀도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심축이다.
극 후반부에 소년의 위험한 욕망은 친구의 엄마에 이어 헤르만의 아내를 향한다. 헤르만은 마치 백일몽에서 깨어나듯 화들짝 놀라 클라우디오의 뺨을 후려친다. 허구와 현실의 공존이 깨지는 지점이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2015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고(故) 김동현 연출의 유작이다.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협력자였던 아내 손원정이 고인의 뜻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리메이크 연출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미화 백익남 김현영 유승락 나경호 유옥주 등 출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