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허구와 현실의 경계는 어디인가'-연극 '맨 끝줄 소년'(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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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0년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시(詩)는 자연의 모방(mimesis)'이라고 정의한 이래 이 명제는 서양 예술의 출발점이 되었다. 예술(詩)은 현실(자연)의 재현(모방)이기에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묘사하느냐에 따라 여러 사조가 등장했다.
문학교사 헤르만(박윤희 분)은 항상 교실 맨 끝줄에 앉아 있는 클라우디오(전박찬 분)의 작문 숙제에 흥미를 느낀다.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그의 작문에는 같은 반 친구 라파의 가족에 대한 수상한 관찰과 친구의 엄마에 대한 은밀한 욕망이 담겨 있다. 헤르만은 소년의 재능을 발전시키기 위해 점점 더 소설적 완성도와 매력적인 전개-이를테면 갈등의 고조-를 주문하고, 클라우디오는 이를 차근차근 실천에 옮긴다. 허구(소설)가 현실의 재현을 넘어 현실을 변형하고 새로운 상황을 창조한다. 그럼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를 뒤집는다.
책상과 탁자 4세트만을 활용한 단순한 무대는 곧 허구와 현실이 공존하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하다. 여기서 교실의 맨 끝줄은 모든 이를 볼 수 있으면서 자신은 숨을 수 있는 곳이다. 허구와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상징한다.
'맨 끝줄 소년'은 이렇게 통속적 코드를 차용하면서, 메타 연극과 지적(知的) 드라마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메타 드라마의 틀에 예술과 윤리의 경계, 소외된 청소년들의 문제, 글쓰기와 상상의 위태로움 등 여러 생각거리들을 담아 뇌와 시선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애드립으로 범벅된 대학로의 상업극들과 주기적으로 올라가는 낯익은 고전들 사이에서 만난 연극이라 더욱 신선하다.
2015년 초연에 이어 다시 '맨 끝줄 소년' 역을 맡은 전박찬은 모노톤의 발성에 집요한 욕망, 순수와 가식, 기쁨과 좌절 등 상반되는 요소들을 절묘하게 녹여, 흔치 않은 신비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드라마의 밀도와 긴장감을 유지하는 중심축이다.
극 후반부에 소년의 위험한 욕망은 친구의 엄마에 이어 헤르만의 아내를 향한다. 헤르만은 마치 백일몽에서 깨어나듯 화들짝 놀라 클라우디오의 뺨을 후려친다. 허구와 현실의 공존이 깨지는 지점이다.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다.
2015년 국내 초연된 이 작품은 고(故) 김동현 연출의 유작이다. 그의 아내이자 평생의 협력자였던 아내 손원정이 고인의 뜻을 잇고 발전시키기 위해 리메이크 연출을 맡아 더욱 화제를 모으고 있다.
우미화 백익남 김현영 유승락 나경호 유옥주 등 출연. 3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