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국대학교 영화과를 거쳐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영화과를 졸업한 김보라 감독은 2002년 단편영화 '계속되는 이상한 여행'으로 영화계에 입성, 이후 '빨간 구두 아가씨'(03) '귀걸이'(04) '리코더 시험'(11) 등의 단편을 선보였고 '벌새'로 본격 데뷔했다. '벌새'에 앞서 공개한 '리코더 시험'으로 그해 우드스톡영화제 학생 단편영화 부문 대상, 대구단편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김보라 감독은 '벌새'로 그야말로 화려한 데뷔식을 치르게 됐다.
|
|
김보라 감독은 "우리 영화는 사회 문제, 가부장적 관습, 우정, 사랑 등 다양한 메시지를 포괄하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벌새'에 등장하는 인물을 그릴 때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고 더구나 단선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폭력적인 장면과 선정적인 장면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드라마 감정상 할 수 없이 넣어야만 했던 몇몇 장면을 빼고는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가부장적인 폭력성에 찬성하거나 합리화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었다"며 "비정한 인물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반대로 좋은 모습으로만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했다. 사랑의 마음으로 그린 인물을 비인간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때론 따뜻하게, 때론 잔인하게 보일 수 있는 게 인간적인 면모인 것 같다. 이 작품 또한 단순히 착한 소녀의 성장기가 아닌 여러 빈틈 있는 캐릭터와 주인공이지만 이 또한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
'벌새'는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수상 소식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관객상을 시작으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집행위원회 특별상,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네레이션 14Plus 부문 대상, 제18회 트라이베카 영화제 최우수 국제장편영화상·최우수 여우주연상·촬영상, 제45회 시애틀국제영화제 경쟁 대상, 제38회 이스탄불국제영화제 국제 경쟁 대상, 제9회 베이징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 언급상, 제35회 LA아시안퍼시픽영화제 국제 경쟁 심사위원 대상 등 전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무려 25관왕 수상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거장 박찬욱 감독은 '벌새'를 두고 "속히 속편을 내놓으라"라는 특별한 추천사를 쓰기도 했고 몇몇 평론가들은 독립영화계 '기생충'이라는 호평을 쏟아내기도 했다.
|
이어 "상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다. 물론 감사하지만 상은 오가는 것일 뿐, 상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작품에만 의미를 두고 싶다. 사실 내겐 관객의 반응이 가장 큰 힘이었고 상이었다. 영화 만드는 과정은 많이 아팠지만 결과적으로 관객에게 큰 힘을 받고 보상을 받게된 것 같다. 다음 작품을 만드는 원동력이 됐고 또 절대 잊지 못할 순간들이 많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벌새'를 만들면서 아쉬웠던 지점이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가 부러져야 했던 부분이 많았다. 애쓴다고 달라지는 것도, 변하는 것도 많이 없더라. 지금 내게 주어진 것은 수상 결과를 만끽하는 것보다 개봉 준비를 차분히 하고 내 할 일을 열심히 하며 관객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벌새'의 메시지가 진실되길 바랄 뿐이다. 악평도 호평도 있을 수 있다. 영화가 만들어진 이상 어떤 것도 피할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벌새'에 담은 나의 진실한 마음이 관객의 마음에 와닿길 염원한다"고 고백했다.
또한 "독립영화계 '기생충'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너무 감사한 일이다. 개봉을 앞두고 떨리긴 하지만 '이 영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야 한다'라는 마음이 사실 없다. 당연히 '벌새'를 위해 수고하고 함께한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도록 많은 관객이 봐주면 좋겠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독립영화계 '기생충'으로 남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사하고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
그는 "대학원 수업 시간에 한 교수가 클리셰를 피하는 방법을 물어보더라. 그 교수의 답은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클리셰를 피할 수 있다'였다. 나 역시 클리셰를 피하고자 구체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해외에서 관객의 평이 '다 내 이야기 같다'고 하더라. 인간의 아주 구체적이고 원형적인 이야기를 보여준 게 우리 영화의 장점이지 않을까? 비단 나만의 기억이고 나만 힘들었던 이야기로 접근했다면 원형적 서사를 못 보여줬을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그때 그 시절, 모두가 은희(박지후) 같고 은희 부모님 같았기 때문에 우리 영화에 공감을 해줬다"고 자신했다.
'벌새'는 박지후, 김새벽, 정인기, 이승연, 박수연 등이 가세했고 단편 '리코더 시험' '귀걸이' '빨간 구두 아가씨' 등을 연출한 김보라 감독의 첫 장편 독립영화다. 오는 29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주로 알아보는 내 운명의 상대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