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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李·朴정권 블랙리스트 1호"…정지영 감독, 7년만에 선보인 '블랙머니'

기사입력 2019-11-06 13:06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 "내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만들 때는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 역사 속에 어떤 의미를 가지가, 우리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금융스캔들을 소재로 한 영화 '블랙머니'(질라라비·아우라픽처스 제작). 메가폰을 잡은 정지영 감독이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라운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1983년 개봉한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로 데뷔한 이래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 '부러진 화살'(2012), '남영동1985'(2012)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와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날카롭게 꼬집어낸 정지영 감독. 뿐만 아니라 '천안함 프로젝트'(2013), '직지코드'(2017), '국정교과서 516일: 끝나지 않은 역사전쟁'(2017) 등 다큐멘터리 제작을 통해 끊임없이 한국의 이면까지 조명하며 일침을 가해온 한국 영화계의 '영원한 청년 감독' 정지영 감독이 7년만의 연출작 '블랙머니'로 돌아왔다.

'블랙머니'는 2003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팔고 한국을 떠난, 이른 바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자신이 담당했던 피의자의 자살로 곤경에 처하게 된 검사 양민혁(조진웅)이 누명을 얻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는 내용을 그린 금융 범죄 실화극이다. 묵직한 화두를 던져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물론 사건의 추적과정을 스피디하게 흥미롭게 그려내며 영화적 재미까지 선사한다.
이날 정지영 감독은 '블랙머니'라는 작품을 시작에 대해 묻자 "영화의 제작자에게 제안을 받은 이야기다. 그 친구가 당시 은행 노조 쪽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다가 영화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그 친구가 저와 친하기도 하고 또 이야기가 저와 어울린다며 메가폰을 잡아보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줬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은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화 가능한가 생각을 해봤다. 생각을 해보니 영화화해서 잘만 만들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이런 경제 사건을 영화화 하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웠다. 어려운 경제 이야기의 이면을 일반인들이 잘 모르지 않나. 나 또한 일반인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상당히 시나리오화하는 게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잘 모르고 어려운 경제 이야기임에도 포기 하지 않고 꼭 영화화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몰랐기 때문에 해야 했다. 나도 몰랐고 사람들도 몰랐기 때문에 해야 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 "우린 금융자본주의에 살고 있지 않나.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우리는 그 금융자본주의가 뭔지를 잘 모른다. 이 영화는 그 금융자본주의를 말하는 영화다. 이 영화가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아내는 정지영 감독. 그는 자신의 작품 세계에 대해 "내가 선택하는 소재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택한 것들이긴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 항상 더 많은 대중이 봐줬으면 하고 영화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건 일부 지식인만 알아도 돼'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본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저는 '대중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난 아티스트가 아니다. 아티스트는 관객을 의식하면서 영화를 찍지 않는다. 나는 항상 대중을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난 아티스트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남영동1989' 이후로 7년 만에 연출작을 선보인 정지영 감독. 신작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를 묻자 "'블랙머니' 말고 다른 작품도 준비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은 나 정지영 감독이 하고 싶은 영화를 할 수는 없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멜로 드라마도 준비해봤다. 그런데도 잘 안되더라"며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블랙리스트 1호였다. 그레서 투자자들이 꺼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내 눈으로 확인했다. 제가 '남영동1989' 이후 7년 동안 영화를 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블랙리스트 실체를 확인하고 나서의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물론 화는 좀 났다. 그런데 무엇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2000년대 내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나 싶더라. 다시 말하면 생존권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회 고위층이 얽힌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는 '블랙머니' 역시 제작 기획 당시에는 쉬운 영화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정 감독은 "당연히 압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비밀리에 준비를 했다. 투자자들이 투자도 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래서 소위 제작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펀딩을 받아 영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지 투자자가 바뀌어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 영화에서는 생소한 금융 관련 영화를 만들면서 참고한 할리우드 작품에 대해 묻자 "할리우드의 금융 영화 '빅쇼트'나 '마진콜'도 모두 봤다. '저렇게 만들진 말아야 겠구나' 싶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 작품 모두 훌륭하지만 일반인들이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나는 훌륭하고 대단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일반 관객이 이해하고 깨달아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국 영화 중 '국가부도의 날'도 봤다. 그 영화가 384만 관객이나 불러모았는데 한구겡서 이런 어려운 이야기를 다룬 금융 영화도 그만큼의 관객이 드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도 '블랙머니'를 만들어도 되겠구나 싶어서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어려운 금융 관련 사건을 쉽게 풀기 위해 가장 강조한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정 감독은 "내막을 캐다보면 어려운 경제 용어도 나오고 관계의 복잡함도 나온다. 일단 이런 영화의 실체를 캐기 위해서는 경제 전문 기자, 경제 사범 전문 경찰, 경제 전문 검사, 은행원이 주인공이 되야 되지 않겠나. 하지만 은행원이나 경제 전문 검사 등 경제 전문가들은 이미 경제를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을 바로 이해시키긴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경제 전문이 아닌, 경제를 잘 모르는 검사 양민혁(조진웅)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어려운 용어에 대해서는 자막을 써볼까 생각을 해봤는데 자막을 쓰면 리얼리티가 깨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막을 과감히 포기하고 관객이 어려운 용어를 듣기만 해도 감으로 유추할 수 있게끔 만들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지영 감독은 주인공 양민혁 검사 역의 조진웅에 대해 "조진웅은 내가 평소에도 '저 친구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배우다. 조진웅에게는 '파워'가 보인다. 그래서 선뜻 캐스팅을 했고 본인도 기꺼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화 감독이라는 건 캐스팅을 했을 때 머리 속에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런데 조진웅은 내가 미처 그리지 못한 연기를 하더라. 근데도 그게 내 마음에 확 다가오더라. 내가 생각하는 양민혁 보다 더 양민혁인 것 같았다. 이미 조진웅은 주인공에 빙의가 돼 있었다. 정말 훌륭하게 해냈다"고 말했다.
영화 스틸
'극한직업' 등에서 보여준 코믹한 이미지를 벗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이하늬. 정지영은 그런 이하늬를 냉철하고 날카로운 경제 전문가 역을 맡긴 이유에 대해 묻자 "사실 내가 본 이하늬씨의 영화는 이 작품 속 냉정한 엘리트의 모습을 찾아내긴 힘들었다. 오만하고 냉정하고 당당한 엘리트의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우연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다. 그걸 보고 정말 당당하고 시원시원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걸 믿고 가보자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리고 주변은 많은 사람들이 이하늬를 추천했다. 그래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이하늬라는 연기자의 내공을 봤다. 작품을 많이 해서가 아니고 잘 하면서 쌓아온 내공이 있고 단단한 배우였다. 이 하늬에게 충분히 김나리 캐릭터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항상 한국 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담은 영화를 만들어온 '블랙머니', 정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에 대해 묻자 "나의 작품은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지만 관객은 여러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거다. 내가 어떤 영화를 선택하고 만들 때는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리 역사 속에 어떤 의미를 가지가, 우리 가치관에 어떤 가치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생각하면서 만든다. 하지만 각자 해석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영화는 개봉하고 나면 관객의 것이다. 나는 영화를 단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블랙머니'는 조진웅, 이하늬를 비롯해 이경영, 강신일, 최덕문, 조한철, 허성태 등이 출연한다. 11월 13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사진 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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