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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천문' 허진호 감독이 세종과 장영실을 스크린에 그린 이유

기사입력 2019-12-24 09:11


영화 '천문' 허진호 감독이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삼청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19.12.18/

[스포츠조선 이승미 기자]'멜로 거장' 허진호 감독은 왜 세종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기고 싶었을까.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한석규)과 그와 뜻을 함께했지만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사극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이하 '천문', 하이브미디어코프 제작).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허진호 감독이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획일화된 신파 로맨스의 형식을 탈피하는 세련된 화법의 멜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1998)로 데뷔하자마자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허진호 감독. 이후 허 감독은 "라면 먹고 갈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등 한국 영화사에 남을 희대의 명대사를 남긴 '봄날은 간다'(2001), '행복'(2007) 등 멜로 수작과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라는 운명의 무게를 짊어진 덕혜옹주의 삶을 담아낸 '덕혜옹주'(2016) 등의 작품에서 등장인물의 심리와 정서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3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천문'을 통해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 세종과 천재적인 과학자 장영실을 조명했다. 세종과 각별한 사이였지만 '안여 사건'(장영실이 만든 안여가 부러져 장영실이 국문을 받게 된 일)으로 문책을 받으며 곤장 80대형에 처해진 이후 역사 속에서 어떠한 기록도 남겨지지 않은 채 사라진 장영실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 '천문'은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됐다. 세종과 장영실, 두 천재 사이의 관계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관객에게 큰 울림을 전하는 천문'은 허진호 감독의 특장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데뷔작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이전 작인 '덕혜옹주'까지 거의 모든 연출작의 각본에 직접 참여해온 허진호 감독은 '천문'은 직접 각본을 쓰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다고 이야기 했다.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한 사람은 왕이었고 한 사람은 관노였고 또 한 사람은 백성들을 위해 꿈을 꾸고 또 한 사람은 그 꿈을 실현시켜주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군신 관계를 넘어 우정을 나눴다.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린 장영실의 이야기가 영화적으로 봐도 굉장히 미스터리했다. 이 미스터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사라진 장영실에 대한 미스터리와 한글 창제와의 연결고리를 그려낸 '천문'. 과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험하기도 한 이러한 설정에 대해 허 감독은 "장영실이 실제로 활자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다. 장영실이 금속 활자인 '가빈자'를 만든 사람이기도 하다. 그 당시는 활자를 찍어낼 수 있는 양이라는 게 한정돼 있는데 장영실의 가빈자를 통해 더 많은 활자를 찍어낼 수 있게 됐더라고 하더라. 이러한 것들을 한글 창제와 연결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세종대왕도 한글을 창제하고 인쇄로서 이 글자를 보급시키려고 했을 거다. 그런 점에서 충분히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 '천문' 허진호 감독이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문'은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한석규)과 장영실(최민식)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삼청동=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19.12.18/
이러한 허 감독의 생각은 여러 역사적 전문가의 자문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완성됐다. 여러 역사 전문가를 통해 수많은 의견을 듣고 수많은 사료 조사를 해왔다는 허 감독은 "세종리더십 연구소 회장이시니 여주대학교의 박현모 교수님께서도 지금 봐도 굉장히 모던하고 힘찬 한글의 금속 활자 디자인을 보고 장영실이 이 디자인에 연관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보셨다고 하더라"고 설명했다.

이날 허진호 감독은 역사적 사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팩션 사극'이지만 역사적 사실로 기록된 것들에 대해서는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중요했다고 누차 강조했다. 앞서 세종의 한글 창제를 다룬 영화 '나랏말싸미' 등의 영화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던 바, 사극 영화 제작에 있어 역사적 고증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인으로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를 만드는 사람, 특히 역사물 시대극을 만드는 사람들은 정말 자료 조사를 많이 한다. 엄청난 양의 자료를 조사하고 이를 구현하려고 애쓴다. '천문'도 마찬가지다. 천문의를 구현하는데 있어서도 고증을 바탕으로 몇 개월에 걸쳐 직접 천문의를 만들었다. 물론 간이대에 천문의를 올려놔야 하기 때문에 안전상의 이유로 실제 천문의 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로 제작됐다. 이 천문의를 통해 별자리를 측정하면서 세종과 장영실의 대화 내용들은 영화적 상상력을 통해 완성하는 거다. 영화라는 매체는 사실을 기반으로 상상력을 더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영화라는 매체는 영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각과 같은 프레임에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허진호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세종과 장영실, 두 사람의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장영실은 노비 출신이 자신과 같은 신선에서 누워서 하늘을 보았던 세종을 목숨을 다 받쳐 따르고 싶었을 거다. 자신과 같은 천민 출신들을 위한 대의를 꿈꾸는 세종을 보는 장영실의 마음은 우리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세종은 장영실을 진심으로 벗으로 생각했고, 장영실은 자신을 벗으로 생각해준 왕에 대한 진한 고마움이 있었을 거다. 이런 두 사람의 진진한 감정이 최민식과 한석규, 두 배우의 케미로 더욱 빛을 발한 것 같다. 두 사람의 진진한 독대신 같은 경우는 감독인 저의 개입 없이 정말 오로지 두 배우만 완성한 장면이다. 그 장면에서 보이는 두 사람의 표정, 눈빛, 말투, 호흡 같은 것들이 정말 좋았다. 실제로 동료로서 선후배로서 친구로서 깊은 신뢰 관계를 가지고 있는 두 배우 덕분에 멋지게 완성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천문'에는 최민식, 한석규, 신규, 김홍파, 허준호, 김태우, 김원해, 임원희 등이 출연한다. 오는 26일 개봉.

이승미 기자 smlee0326@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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