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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양준일 신드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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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은 1991년 '리베카'로 데뷔했다. 하지만 시대를 너무나 앞서간 그의 패션과 음악, 퍼포먼스를 당시의 시대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와는 다르다'는 것에 대한 편견은 극심한 거부감과 반발로 이어졌다. 아무도 양준일에게 곡을 주지 않았고, 방송 출연 기회도 주지 않았다. 재미교포이기 때문에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는데도 영어가사를 많이 사용한다며 방송에서 배척시켰다. 방송가 뿐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가 양준일을 거부했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다는 게 싫다"며 비자 갱신을 거부해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V2로 활동 재개를 타진했으나 이번엔 계약문제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0여년이 지난 뒤 대한민국의 문화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글로벌 음악에 익숙해지면서 시대를 앞서나갔던 양준일의 패션과 음악, 퍼포먼스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다르다'고 거절당했던 양준일의 음악은 오히려 '색다른 시도'로 다가왔고, 기존 1990년대 한국가요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신선함에 대중은 호기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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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인성까지 더해졌다. 양준일은 연예계 활동을 포기한 뒤 미국으로 돌아가 가정을 꾸리고 식당 서빙일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활동 당시에 받았던 상처들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그토록 많은 아픔을 겪고도 여전히 씩씩하고,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인성에 대중은 다시 한번 반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꼈다.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위 말하는 '왕따'를 시킨 과거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다. '이제는 상처없는 꽃길을 걷길 바란다'는 응원이 줄을 잇고, 팬들은 '양준일 지킴이'를 자처한다.
tvN '코미디 빅리그'사태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양준일의 '슈가맨' 무대를 패러디한 코너에 팬들은 "한국 사회가 상처를 줬는데 또 상처를 주며 재미있다고 웃는 게 개그인가. 그건 폭력이다. 선한 사람을 비하하하고 웃는 모습을 개그로 내보내다니 우리 사회에 풍자할 대상은 널렸다"며 항의글을 쏟아냈다.
결국 30년이 지나 찾아온 양준일의 전성기는 양준일 본인이 가진 재능과 인성, 타이밍, 과거에 대한 미안함이 합쳐진 시너지다. "대한민국이 나를 받아주는 따뜻함이 나를 녹여줘서 나의 과거가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 같다. 여러분이 원하는 동안은 모든 스케줄을 다 해보고 싶다"는 양준일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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