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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이유나 기자] "내 인생은 재방송이었는데.. 이제는 생방송이 됐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는 방송을 듣고 아내와 박수를 쳤다"는 양준일은 "뉴스에서 보던 자리에 제가 나간다는게 너무 신기하다. 예전에는 한국에서 언제 떠날까라는 생각을 하고 왔었는데, 이제는 희망을 싸서 품에 안고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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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다시 돌아와 사인회를 했는데 너무 놀랐다고. 그는 "V2 시절 3~4명이 싸인을 받았다"며 "어떻게 한번에 방송으로 뒤집어 엎을수 있는지 너무 놀랍다. 제가 미국에 들어가서 '슈가맨3' 보고 감동적이었는데 손석희 사장님이 앵커 브리핑 하는거 보면서 엉엉 울었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까. 사람들이 나를 왜 궁금해할까. 양준일이라는 이름을 숨기고 미국 이름만 쓰고 살았는데"라고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10살에 미국에 가족과 이민간 양준일은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왕따를 당했다. 그는 "싸움을 많이 했다. 말도 못하고 많이 싸웠다. 한때는 한꺼번에 3명과 싸운적도 있다. 실질적으로 한국에 와서 해프닝이 많이 있었지만 미국에서 해프닝이 심하게 있었던 것 같다"고 아팠던 그 때를 회상했다.
팬미팅 아이디어 회의 현장. 양준일은 "아이디어 회의가 생애 처음이다. 예전에 혼자 다 하다가. 팀이라는 것에 기분이 좋고 기대감이 생긴다. 희망이 커지고 같이 해주시고 지원해준다는게 감사하고 새로운 시작이었으면 좋겠다"고 감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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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서버일을 쉬는 날에 그의 취미는 5살 아이 쫓아다니기다.
양준일은 "저를 많이 닮은 아이다. 점점 더 닮아가는것 같다"고 행복해했다. 아이의 성격이 활달함이 넘쳐 와일드 하다고도 했다.
그는 "우리 아이가 태어났을 때 조리원에 있었는데 우리 애가 울면 다른 애들이 다 깨서 조리원 선생님들이 힘들어했다"고 에피소드를 전했다.
또 "'슈가맨3' 촬영 때 애가 밖에서 뛰는 거예요. 여기 문들이 다 투명하잖아요. 그래서 모르고 박았는데 아프니까 울면서 또 뛰는거예요. 제가 피곤해요"라고 덧붙이며 행복한 아빠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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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2 활동을 끝내고 가세가 기울었을 때 집안을 잠시 일으켜 준 것도 그의 패션 감각이었다. 당시 미국에서 제가 몇벌씩 옷을 골라 보냈고, 부모님이 압구정에서 할인 매장 하나를 빌려 판매했다. 반응이 좋아서 매장이 4개까지 늘어났는데 IMF가 와서 다 닫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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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은 달라진 요즘에 대해 "예전에는 우울하고 늘어졌다. 하루하루 바뀌는데 재방송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같은 하루가 (생방송처럼) 쭉 가는것 같다. 정말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ly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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