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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윤석열 대선후보가 시원하고 솔직한 입담으로 예능까지 접수했다.
이어 '자신이 검사가 아니었다면?'이라 묻자 "제가 시골에서 근무할 때 시골 다방을 방문했다. 재미로 종업원에게 직업을 물었더니 '모래 채취 업자' 같다더라. 강줄기가 많은 정선인데 허가 없이 채취하는 불법 업자 같다는 거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 뒤에 도시에 갔는데 후배랑 밥을 먹고 나니까 음식값이 비싸더라. 그리고 그 뒤에 선배랑 갔는데 저보고 '검사세요?'라고 물었다. 공무원들과 일반 사람들의 밥값을 다르게 받았던 거다. '그럼 제 직업을 뭐로 보셨어요?' 라 했더니 건설회사 회장이라는 거다. 회장이 검사보다 나으니까 '사장님 고맙습니다. 다음에 오면 팍팍 쓰겠습니다'라고 답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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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온갖 메신저를 통해 훈수가 엄청 들어온다. 아침 저녁으로 답변만 4시간을 했다.요즘은 업무를 위해 필요한 부분만 답한다. 정치 초보라 걱정이 되는지 조언이 많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선거철 후보들의 홍보 연락을 후보도 받냐'는 질문에는 "제 것도 오고 다른 분 것도 온다"라고 답해 민경훈의 궁금증을 해결해줬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에 '최순실 사건' 등이 화두에 오르자 "초임 검사 시절이 생각난다. 중학생 소년이 송치가 됐다. 보육원에서 나와 공장에 취업해 일하다 손가락이 잘렸더라. 그리고 1년 후 다른 범죄로 구속이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법원에 가면 보석으로 나온다길래 보석신청서를 써줬다"라며 강렬했던 초임 검사 시절 에피소드를 전했다.
윤석열은 "저는 다섯 끼를 먹고 공부했다"라며 '서울대 공부법'에 "우리 고등학교에서 4~50명이 서울대를 갔다. 공부를 잘한다는 학생들이 많이 왔다더라.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선생이 된 게 아닌가 싶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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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은 '밥 총무'에 대해 "부장은 밥 먹는 횟수는 적지만 돈을 많이 내니까 부장님 입맛에 맞춰서 간다. 전날 과음한 것 같으면 부장님에 맞춰서 해장국을 먹으러 가는 거다"라고 조직생활에서의 융통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윤석열은 '결혼할 때 2천만 원 밖에 없었다던데?'라 묻자 "아내와 결혼하기 전에 그냥 '돈이 없다'라고 말한 거고, 그거보단 더 있었다"라며 머쓱하게 말했다. 이어 '주식, 사기' 여부에 대해서는 "저는 돈이 없다는 걸 알아서 저한테 돈을 빌리는 사람도 없었다"라고 능청스럽게 답했다.
윤석열은 "저는 사람을 좋아한다. 고시공부 하고 백수일 때 온동네 관혼상제를 다 다녔다.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있다. 사법고시 바로 전 토요일에 대구에 함 지러도 갔다"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처음에는 안간다고 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대구에 내려갈 때 올라올 때 차 안에서 공부하자 싶었다. 차 막히는 시간 동안 할 게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수험서도 꺼냈다. 그 과목 수험서 제일 뒤에 한 번도 출제되지 않은 뒷부분이 있었다. 그걸 재미로 읽었다. 재밌게 놀고 올라와서 4일간 시험을 봤다"라고 했다.
또 "마지막 과목 시험에 다른 사람들은 다 탄식이 나오는데 딱 내가 재미로 봤던 내용인 거다. 그래서 잘 쓰고 나오면서 '합격하겠는데?'라 생각을 했다. 나중에 점수를 보니까 그 과목에서 최고 득점을 했다. 대구에 함 지러 안갔으면 못읽었을 거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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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대표에 대해서 "젊은 사람 트렌드를 잘 알아서 당직자들이 배울 게 많다"고 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어록에 윤석열은 "과거 국정감사에 총장을 지칭해 '사람에게 충성하는 거 아니냐'라 해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고 했는데 그게 유명해졌다. 당연한 거다. 원래 충성은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라 국가에 하는 거다. 사람에게는 존경을 하는 거다"라며 신념을 밝혔다.
검사들 모임에 대한 궁금증에서는 "영화 '더 킹'을 보면 서울 지검에 전략 본부가 있고 비리 파일들이 가득하더라. 500% 영화다. 사건이 발생하면 조사하는 거지 얼마든지 구속할 수 있는데 선별적으로 조사하는 일은 전혀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윤석열은 "올 한 해 나는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인생 60년을 살면서 최대 격변의 시기였다. 사회로 비유한다면 독일에서 임금이 세 번 바뀌었던 것처럼 제 개인으로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라고 마무리 했다.
shy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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