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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실물 음반 8000만 장을 파는 시대다. 체감도 어려운 천문학적인 숫자가 놀라움을 자아내면서도, 덩달아 물리적 의문도 든다. 그 많은 앨범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
특히 똑같은 앨범을 여러 장 산다는 것이 특징이다. 유통사나 앨범 버전마다 굿즈가 다르거나, 어떤 경우에는 미공개 포토카드 등이 포함돼서다. 또 일부 팬들은 팬사인회 같은 이벤트에 응모하기 위해 앨범을 다량 구매하기도 한다.
늘어난 앨범 갯수 만큼 보관하기도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최근 K팝 팬덤은 단순하게 실물 음반을 간직하지 않는 분위기다. K팝 음반을 이용한 '꾸미기'가 새로운 팬덤 문화로 감지되고 있다. 포토카드 꾸미기('포꾸'), 탑로드 꾸미기('탑꾸'), 폴라로이드 꾸미기, 앨범 스크랩하기 등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형태로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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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꾸'나 '탑꾸'는 숏폼 플랫폼에서 인기다. 해당 콘텐츠만 다루는 계정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과정을 ASMR 콘텐츠로 만들기도 한다. 'ASMR 꿀벌 탑꾸'라는 제목의 영상은 4개월 만에 무려 99만 뷰를 넘어섰다. 이에 문구업계에서도 귀여운 캐릭터는 물론, 폭죽이나 리본 등을 묘사하는 컨페티, 간단한 문구를 표현하는 알파벳이나 숫자 등 여러 가지 스티커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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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더 뚜렷하게 나타난 팬덤 문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업계에서는 팬데믹에 콘서트가 열릴 수 없자 실물 음반으로 소비가 집중됐고, 오프라인 취미 생활을 즐기지 못하게 되면서 꾸미기 같은 문화가 생겼다고 봤다. 이 문화가 콘서트가 재개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가요 관계자는 "요즘 앨범은 화보집처럼 구성돼 볼거리가 많다. 그만큼 2차로 생산하고 유희할 거리도 많다. 팬덤에서는 팬픽, 팬아트, 움짤 등 다양하게 콘텐츠를 재생산해왔는데 앨범 스크랩이나 '포꾸'도 비슷한 선상이다. 특히 거리두기로 달고나 만들기 등 집에서 할 수 있는 놀이가 유행한 덕분에 이러한 꾸미기 현상도 일어난 것 같다. 똑같을 앨범을 여러 장 사는 팬들에게는 이 문화가 앨범을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꾸' 문화가 다시 유행하면서, 팬덤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봤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원래 한정판 아이템이 인기 있었다면, 이제는 기성 제품을 구매해서 자신만의 개성으로 꾸미고 있다. 에어팟, 폰케이스 등을 기호에 맞춰 꾸미는 것도 마찬가지다. IT 사회에서 아날로그 꾸미기가 다시 유행하는 것이다. 과거 열풍이었던 '다꾸'가 부활한 것처럼 팬덤에서도 꾸미기 놀이가 활기를 띤다. 관련 제품 구매층을 봐도 자신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MZ세대와 과거 추억을 소환하는 기성세대 모두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