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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잔인한 단절과 절망적인 상실을 겪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다. 재난에 대한 뚝심의 메시지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한 신카이 마코토의 마지막 여정은 가장 현실적이고 직시적이라 더욱 서글프고 공포스럽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내일을 살아가게 하는 강력한 위로를 잃지 않아 끝내 미소를 짓게 만든다. 신카이 마코토의 마음 문단속을 믿고 보는 이유다.
부모를 잃고 이모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자라온 스즈메에게 재난의 문은 너무 무겁고 가혹한 숙제였다. 단지 호기심에 연 문이 초래한 엄청난 재앙을 감당하기에 모든 것이 낯설고 버거웠지만 그 힘든 여정을 견디고 버티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이었다. 다리가 세 개뿐인 유아용 의자가 된 잘생긴 소타의 굳은 소명은 스즈메에게 큰 동기부여가 됐고 또 시코쿠, 고베, 도쿄, 그리고 미야기현을 이동하며 고군분투 중인 낯선 이방인 스즈메를 따뜻하게 맞아주는 이들이 있었기에 재난과의 전쟁을 포기할 수 없었다. 상실의 시대이지만 그 속에서도 상실되지 않은 사람들의 연대가 문단속을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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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엄마를 잃은 충격으로 기억을 닫고 사는 스즈메는 재앙의 문을 연 순간 엄마를 찾아 목 놓아 울며 떠도는 과거의 어린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엄마를 찾다 길을 잃은 자신이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잊고 싶었던 시간을 마침내 마주한 것. 스즈메는 자신의 마음속 깊이 요석으로 단단히 누르고 있었던 무언의 슬픔과 마주하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비단 스즈메뿐만 아니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전 세계 모두의 공감대를 형성, 단전 깊이 울림과 위로를 전한다.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은 고아 스즈메를 거둔 젊은 스즈메의 이모에 대한 스토리도 흥미롭다. 언니를 잃은 슬픔과 혼자가 된 조카에 대한 연민으로 결혼도 포기, 싱글맘을 자처하며 헌신하는 이모와 이러한 이모가 부담스럽기도 안타깝기도 한 사춘기 소녀 스즈메는 가슴 한켠에 부담과 미안함을 동시에 품게 되면서 이모와 갈등을 겪는다. 알게 모르게 쌓였던 갈등의 골이 터지는 장면 역시 '스즈메의 문단속'이 어떤 애니메이션보다 현실적인 문제를 직시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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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메의 문단속'은 국내에서 2016년 개봉해 379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 2위 기록을 기록한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자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19)에 이은 '재난 3부작' 중 마지막 시리즈다. 특히 '재난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애니메이션 특유의 비현실적인 판타지 감성의 한계를 너머 좀 더 직관적이고 명확한 주제 의식과 현실에 발을 디딘 메시지 전달로 실사 영화 못지않은 재미와 공감을 선사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사람과 사람의 연대, 버려진 공간에 대한 그리움,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을 농축해 만든 신카이 마코토 세계관의 집대성이자 클라이맥스, 정점이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에 이어 '스즈메의 문단속'까지 세 번의 1000만 기록을 달성하며 최고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 거장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다른 결의 작화와 메시지로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중이다. 일본 현존 최고의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우뚝 선 그가 '더 퍼스트 슬램덩크'(이노우에 다케히코 감독)를 통해 국내에 분 애니메이션 광풍을 이을 다음 주자로 손꼽히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너의 이름은.'에 이어 다시 한번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국내 관객의 마음 문단속을 확실하게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오는 8일 개봉.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