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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닷컴 김수현기자] 가수 장미화가 털털하게 웃으며 아픈 과거들을 회상했다.
"50대로 보인다"는 혜은이에게 장미화는 "역시 우리 혜은이밖에 없다"라며 고마워 했다. 장미화는 언니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안문숙에 "쟤도 참 안늙는다"라며 귀여워 했다. MZ세대처럼 해보겠다며 유행하는 브이 포즈도 취했다. 언니 말에 동생들도 일제히 '요즘 브이'를 따라했다. 장미화는 박원숙과 수십년만에 만났다 했고 박원숙은 "내 결혼식 부조금을 줬었다. 그걸 받는 게 아니었다"라 해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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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화는 "남편이 사업을 다 망했다. 사업을 계속 늘렸다. 개업 때마다 혜은이가 왔다. 이거 했다 망하면 또 개업, 지인들에게 빚져서 남편 사업 자금을 마련해줬다. 그래서 내가 빚을 갚기 위해 하루에 12군데 무대를 뛰기도 했다. 6시에 나와서 새벽 4시까지 일했다. 1년 내내 365일을 일했다. 업소 12군데를 다니려면 신호 하나 걸리면 무대 하나 펑크다"라 회상했다.
이어 "그거 시간 맞춰 가다가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그 사고로 허리뼈가 앞으로 살짝 밀렸다. 근데 사정을 봐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아파서 누워있는데 와서 돈 달라고 하더라. 선입금 받은 행사비를 환불해 달라는 거다. 우리가 야간 업고 다닐 땐 참 힘들었다"라 한탄했다.
장미화는 "내가 업소에 가서 노래를 해야 돈을 버니까 고추장 단지, 오징어다리 날아오고 신물이 난 거다. '에라. 시집이나 가자'가 된 거다"라며 "결혼하고 1년 후 아이를 낳고 2년 살다가 아이가 3살 때 이혼했다. 도저히 먹고 살수가 없었다. 아들을 시댁에서 장손이라는 이유로 데리고 갔는데 죽어도 아이는 못 주겠더라. 그래서 아들을 데리고 오는 조건으로 남편의 빚을 내가 갚기로 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라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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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그런 좋은 분위기였는데 전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새벽에 아들한테 전화가 왔는데 '나 장례식장이야. 아빠가 갔대'라 하더라. 이유를 물으니까 교통사고로 갔다면서 울더라. 나도 같이 울었다. 아버지가 이혼을 했어도 살아았는게 마음 한편을 채워줬을텐데. 장례식장에 있는데 가슴이 아팠다. 아들이 혼자 상주 자리를 지켰다"라며 "근데 섭섭할 대도 있다. 자식이 하나인데 명절엔 집에 없다. 전남편 제사를 지내러 간 거다"라 했다.
장미화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911 테러가 있었다. 한공편이 없어서 귀국하는데 닷새나 걸렸다. 난 우리 엄마 임종을 못봤다. 자식이 나 하난데. 그게 참 한이다"라 속상해 했다. 6.25 전쟁 때 아버지와 헤어진 어머니, 장미화는 "내 위로 언니들이 6명 있었다더라. 근데 다 죽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언니들은 다 죽고 나만 살았다. 돌아가시기 전날 통화에서 어머니가 '후~' 하는 한숨소리를 냈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라 했다.
shy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