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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버려진 땅을 가꾸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꿈꾼 환경운동 단체 '버넘 숲'은 높은 현실의 벽에 점점 좌절한다. 리더인 미라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산사태로 고립된 마을 손다이크를 탐사하던 중 억만장자 기업가 로버트 르모인을 만난다.
결국 '버넘 숲'은 새로운 땅에 씨앗을 심으러 손다이크로 향하고, 토니는 르모인의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홀로 움직인다. 이들을 기다리는 충격적인 사건과 예상치 못한 반전 속에서 각자의 신념이 시험대에 오른다.
2013년 최연소(28세) 부커상 수상자인 엘리너 캐턴이 10년 만에 장편소설 '버넘 숲'(열린책들)을 펴냈다. 빅토리아 시대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한 '루미너리스'로 부커상을 받은 캐턴은 이번 작품에서 환경운동과 기술 자본주의가 충돌하는 현대를 무대로 한 '사회적 스릴러'를 선보인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등장인물의 선과 악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라는 이상을 추구하지만 목적을 위해 타협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고, 르모인은 탐욕스럽지만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역학 관계도 치밀하게 짜여 있다. 미라와 르모인은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끌리는 관계를 형성하고, 토니는 외부인이지만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낸다. 공동체 내부의 갈등도 현실적으로 묘사해 누구도 쉽게 영웅이나 악역이 될 수 없는 복합적인 구도를 만든다.
작가는 단순한 환경과 자본의 대립을 넘어 세대 간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까지 건드린다. 밀레니얼 세대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논쟁,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대립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캐턴은 작품 내내 독자에게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권진아 옮김. 592쪽.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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