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스포츠 훈련의 메카로 만들겠습니다."
예천군은 경상북도 내륙에 자리잡은 인구 5만여명에 불과한 작은 지자체지만, '이름값'만큼은 결코 왜소하지 않다. 바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궁과 육상의 '메카'이기 때문이다.
한국 양궁을 처음으로 세계 최강 반열에 올린 '양궁 여제' 김진호를 시작으로 '신궁' 김수녕과 장용호 윤옥희에 이어 2020년 도쿄올림픽 남자 양궁 2관왕 김제덕까지 한국 양궁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국가대표를 연달아 배출하고 있으며, 김진호의 이름을 딴 진호국제양궁장에선 지금도 많은 국내외 대회가 열리고 있다.
육상의 경우에도 전국 유일의 실내 육상장과 직선 훈련장, 국제 규격 대회장과 웨이트 트레이닝장을 갖추고 있어 사계절 내내 전국의 육상 지도자와 선수들이 모여 날씨 걱정없이 훈련을 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국내 최초로 U-20 아시아 육상선수권대회도 성공적으로 개최했다. 또 올해 말 대한육상연맹 교육훈련센터의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현재 건립중인 예천양궁전용훈련센터까지 갖춰진다면 명실공히 레거시 스포츠의 산실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 소멸의 시대에서 스포츠 산업에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고 꾸준하게 이를 추진하고 있는 예천군이 경북도, KT와 함께 지난해 한국e스포츠협회와 MOU를 맺고 민관 협력으로 'e스포츠 국가대표 훈련센터'(이하 센터) 조성에 나선 것은 이런 면에서 더욱 반갑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업무협약 단계이지만, 이미 예천군은 센터 건립을 위한 타당성 연구를 진행했고, 안동시와 인접한 경북도청 신도시에 부지까지 확보해 조감도와 층별 평면도 작업(연면적 6099㎡, 3층 건물)까지 마치는 등 많은 공을 들이며 참여하고 있다.
민선 7기에 이어 8기째도 맡고 있는 김학동 예천군수는 누구보다 이를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경주에서 열린 LCK 서머 시즌 결승전도 찾았던 김 군수는 최근 예천군청에서 스포츠조선과 만나 "전통 스포츠를 특화시킨 노하우와 열정으로 젊은 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e스포츠와 확실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한다"며 "양궁과 마찬가지로 e스포츠 종주국인 한국의 위상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많은 지원과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양궁과 육상 등 전통 스포츠에 특화된 예천군이 이번에는 어떻게 디지털 스포츠에도 관심을 갖게 됐는지?
▶우선 각종 스포츠 인프라가 잘 갖춰진 수도권이나 대도시에 비해 환경이 열악한 지방의 소도시 예천군이 어떤 스포츠 환경을 조성해 키워나가면 스포츠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느냐는 고민에서부터 시작했다. 타 지자체와 차별화되고 경북도청 신도시와 함께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지역의 이미지를 표현하며, 예천군 대표 스포츠인 양궁, 육상과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스포츠를 생각하게 됐다.
치열한 고민 끝에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처음으로 정식종목이 돼 한국에 금메달을 안겨주고 종주국으로서의 대표성을 가진 e스포츠에 주목하게 됐다.
-어떤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지역 경기장이 아닌 훈련센터를 추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e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이 최적의 훈련을 통해 최상의 경기력으로 국제대회에 출전시키는데 예천군이 기여하고 싶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이다.
우선 양궁 육상 종목과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 이미 항저우아시안게임에 출전한 e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에 국가대표 양궁 선수들의 훈련법을 적용해 좋은 효과를 거뒀고, 현재 군에서 건립중인 양궁훈련센터가 완공된다면 e스포츠 선수들에게 전문화되고 선진화된 양궁 훈련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선수들의 훈련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대한육상연맹 육상교육훈련센터에선 e스포츠 국가대표들의 체력 훈련을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여기에 센터 건립 예정지 인근에 경북도 최초의 KT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건립을 시작으로 첨단산업을 유치하기 위하여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있는데, 미래 성장산업인 게임산업이 e스포츠와 함께 지역에 뿌리내리면 지역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밖에 예천군은 매년 2만여명의 육상인들이 찾을만큼 접근성이 좋다. 국토의 중심에 위치, 중앙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 등이 군 주변을 지나고 있으며, 도청 신도시 권역에 ITX와 인근 문경군에 KTX가 운행하며 수도권과 남부내륙으로 연결된다. 2029년 대구경북신공항이 개항하면 전세계 어디에서도 편리하게 방문하는 등 선수들에게는 최고의 e스포츠 대회와 훈련 장소가, e스포츠 팬들에게는 최고의 체험 및 방문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현재 국가대표 훈련센터 추진 상황은 어떠한가.
▶지난해 6월 한국e스포츠협회와 훈련센터 유치에 따른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타당성 용역을 실시했는데 비용편익(B/C) 분석 결과 1.06으로 사업의 타당성을 확보했다.
그래서 지난해 정부 예산심의를 할 때 지역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에게 설계비 반영을 요청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지만 안타깝게도 최종 예산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내년 예산 확보를 위해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노력하고 있다.
현재 모든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과밀화되는 반면 지방은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이럴수록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거의 없는 e스포츠와 같은 산업을 지방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중앙정부 차원에서 만들어 주면 많은 게임과 e스포츠 관련 산업들이 지역으로 적극 이전하면서 국가 균형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지방의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은 콘텐츠 부족이 심각하다. 훈련센터의 운영 계획은.
▶그래서 전용 경기장이 아닌 훈련센터로 방향성을 잡았다. 물론 센터와 다른 시설을 활용, e스포츠 경기장으로서도 활용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훈련센터는 국가대표만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추진중이다. 물론 국가대표 훈련기간에는 당연히 전용으로 쓰이지만, 이외에는 심판 연수나 e스포츠 아카데미 운영, 일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체험시설로의 활용도 계획중이다. 여기에 대구경북신공항이 들어서면 훈련센터가 공항에서 30분 이내 거리에 위치함으로 해외 선수단의 전지훈련도 적극 유치해 시설의 활용도를 높여 나갈 계획이다.
전세계적으로 전문 e스포츠 훈련 시설이 부족한데다, 세계 최강 한국 e스포츠 선수들이 훈련하는 메카라는 점이 부각되면 인근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11월 열린 '2024 KeSPA 글로벌 이스포츠 포럼 in 서울'에서 그 가능성을 봤다.
- 활용도를 높일 또 다른 계획은 있는지.
▶또 다른 중요한 목표는 '디지털 디바이드'를 해소하기 위한 중심지로의 활용이다. 청년들에 비해 노년층은 충분한 디지털 교육을 받지 못하며 세대간 격차가 더 커지고 있다. 훈련센터에 일반인들도 활용할 수 있는 기기를 구비, 누구나 찾아와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중장년층도 게임과 e스포츠에 대한 인지도와 접근성을 자연스럽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또 예천군에 자리잡고 있는 경국대 예천캠퍼스와 관내 중고등학교에도 이와 관련한 학과를 신설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등 실효성을 높여 가겠다. 훈련센터가 들어설 경북도청 신도시는 젊은층 인구도 상당히 많기에,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디지털의 장벽을 허무는 전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공간도 될 것이라 기대한다.
|
|
-경주에서 열린 LCK 서머 결승 현장을 직접 찾기도 하셨는데, e스포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는지.
▶솔직히 항저우아시안게임 전까지는 e스포츠를 잘 몰랐다. 하지만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을 보고, 지난해 경주 결승 현장을 찾으며 e스포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봤다. 특히 경기장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뿜어내는 열기를 보면서 "아~ 우리 때와는 다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전통 스포츠만이 아니라 이제 디지털 세상에서 겨루는 e스포츠 역시 스포츠의 영역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훈련센터만큼은 예천군에서 유치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e스포츠 종목이나 게임에 대해선 잘 모르고, 20~30대로 e스포츠를 잘 아는 아들과 딸들에게 종종 물어보지만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도 애들이 어떻게 e스포츠 훈련센터 건립을 추진하게 됐냐며 의외라는 반응을 보일 때는 어깨가 으쓱 올라가기도 한다. 앞으로 더 배워서 아이들과 즐겨보도록 하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만, 이제 첫 걸음이다. 정부나 e스포츠 관계자, 팬분들에게 할 말씀이 있다면.
▶다시 강조드리지만 우리 군의 차별점은 스포츠 산업에 대한 '진심'이다. 특히 e스포츠는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그 가능성을 보고 무려 17조원이 넘는 금액을 향후 10년 넘게 투자, e스포츠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한국이 실력이나 시스템적인 측면에선 여전히 종주국으로서의 우위와 자존심을 지켜내고 있지만, 중동뿐 아니라 중국, 북미 등과의 도전과 경쟁에서 밀리는 측면도 있다. 그래서 국가대표 훈련센터의 조성이야말로 한국의 위상을 지키고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하고, 예천군의 소명이기도 하다.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 예천군을 비롯한 지방의 많은 어려움을 e스포츠 산업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센터가 건립되면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길 바란다. 진정한 e스포츠의 메카가 될 수 있도록 최고의 시설과 정주 여건으로 보답하도록 하겠다.
예천=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