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이런말저런글] 뒤집어도 될 말, 뒤집으면 안 될 말

기사입력 2025-07-29 08:08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이 신제품은 우리 회사의 명운을 건 중요한 상품이다 / 지금은 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가늠할 중차대한 시기이다 / 국가의 명운이 청년들에게 달려 있다. 여기서 명운(命運)은 앞으로의 생사나 존망에 관한 처지를 이릅니다. 운명과 다르지 않습니다. 명운이 걸린 일, 운명이 달린 사안 하고 씁니다. 엎치나 메치나입니다. 앞뒤를 바꿔 써도 같은 뜻을 나타내니까요.

더위가 심해져 너나없이 외출을 주저한다고 말합니다. 너와 나의 순서를 바꿀 방법은 없을까 궁리합니다. [내남없이] 합니다. '날마다 푹푹 찌니까 내남없이 냉면만 찾는다' 하는 문장이 성립합니다. 일본인의 사생관은 독특한 면이 있다는 주장을 책에서 봅니다. 죽고사는 문제를 보는 관점을 뜻하는 사생관은 뒤집어서 생사관 해도 의미가 같습니다. 명운이나 운명이나 하는 꼴과 비스름합니다. 단골들 왕래가 줄었다며 음식점 주인이 걱정합니다. 음식 맛이 예전만 못한 것은 아닌지 살펴볼 일입니다. 내왕을 늘리려면 말입니다. 왕래와 내왕 역시 둘러치나 메어치나 사례였습니다.

순서를 바꿔도 같은 낱말이 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명운이나 운명이나 하지만 존망을 망존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뜻하는 성패도 성패 하지 패성 하지 않고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 불물을 가리지 않는다 않습니다. 희비는 비희로 써도 된다고 사전은 가르치지만 희비 하지 비희 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부부를 내외로도 일컫는데, 그때도 외내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을뿐더러 익숙하지도 않아서입니다.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설문했다고 할 때도 남녀라고 주로 씁니다. 여남이라는 쓰임은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의식주(衣食住) 하지만 영어로는 Food(식) Shelter(주) Clothing(의) 한답니다. 관습이고 습관입니다.

앞뒤 바꿈 문법을 구와 절로 확장합니다. 꾸미는 말과 꾸며지는 말을 뒤바꾸는 겁니다. 꾸미는 말을 술어로 만들어 뒤로 보냅니다. 꾸며지는 말은 주어로 앞에 세우고요. 새빨간 사과 → 사과는 새빨갛다, 어떤가요? 말이 됩니다. 새까만 눈동자의 아가씨 → 아가씨의 눈동자는 새까맣다, 이 또한 말 됩니다. 꾸미는 말은 꾸며지는 말에 대해 '말하는'(술(述)하는) 것이기에 둘을 주술관계로 뒤바꿔놓아도 같은 뜻을 나타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대개 그렇긴 합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 예외 없는 규칙이란 없습니다. 말 안 되는 예가 있거든요. 새빨간 거짓말이 대표적입니다. 이것을 거짓말은 새빨갛다 하면 말 안 됩니다. 새까만 후배도 있습니다. 이것을 후배가 새까맣다 하고 쓰고, 기수 차이가 현저하여 보일까말까 한 후배가 선탠으로 살갗이 새까매진 후배로 둔갑하는 참사를 빚습니다. '한미 관세협상 명운걸린 한주'라는 기사 제목을 보았습니다. 한주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네요. 바꿔봅니다. 이번 주(한주)는 한미 관세협상의 운명이 걸린 주입니다. 이건, 말 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새국어소식 통권 제88호 2005.11. 학교문법과 국어 생활, 새빨간 거짓말(2) (이병규 국립국어원) - https://www.korean.go.kr/nkview/nknews/200511/88_7.html

2. 한국일보 매주 목요일: Word Play (재미있는 말), 동서남북 vs. 북남동서 (문화별 방향의 표현) (입력 2014.05.28 18:08)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405281864988564

3. 표준국어대사전(온라인)

4. 네이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합뉴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