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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의지 부족과 역량 부족이 합쳐져 수많은 사람이 절대빈곤의 덫에 빠진 것이 현실이다. 국제사회는 자국 정부가 제대로 나서지 않는 상황에서 아프리카의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절대빈곤을 해결하고자 하는 주요 행위자는 선진국인 공여국,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이 있다. 이들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절대빈곤 인구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이러한 도움의 손길을 우리는 공적개발원조(ODA)라고 부른다.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는 개발협력사업을 통해 각 개도국의 현실에 맞춰 절대빈곤을 해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개발협력사업은 거시적으로는 도로, 교량 등 인프라 사업을 포함한다. 미시적으로는 교육, 보건, 농촌 개발, 물, 인권 등에 관련된 사업을 진행한다. '개발협력 사업'이라는 표현으로 인해 때로는 비즈니스를 한다고 오해받기도 하지만 영어로는 개발협력 프로젝트(project)라고 불린다.
필자는 78개국을 여행하며 직접 현지를 방문하고 조사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다양한 개발협력사업 현장을 다니면서 그 효과성을 평가하고 좀 더 나은 빈곤 퇴치 방향을 찾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많은 개발협력사업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탄자니아 도도마 지역에서 진행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제로 헝거'(Zero Hunger) 사업이다.
이 사업은 WFP가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추진했다. 실행은 굿네이버스가 맡았다. 여러 소득증대 활동이 포함된 개발협력사업이다. 대상 주민은 대부분 절대빈곤 상태였다.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사업 시작 전 이들의 한 달 평균 소득은 4만3천 탄자니아 실링. 달러로 환산하면 약 24달러, 우리 돈으로 3만3천원 남짓이었다. 그나마 일부 상대적으로 부유한 소수의 주민이 있어 계산된 평균이다. 실제 많은 주민은 한 달 소득이 거의 없었다.
제로 헝거 사업은 전 세계 기아를 없애겠다는 WFP의 목표이자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사업은 소득증대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의 절대빈곤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사업에는 양봉, 벽돌 만들기, 가내 축산업, 마을 공동체 금융 등 다양한 활동이 포함됐다. 주민들은 각자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해 사업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소득을 늘리고자 했다. 사업 종료 후 참여주민의 평균 소득은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아래 사진에 나온 한 참가자는 제로 헝거 사업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인터뷰를 통해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녀는 남편과 어린 나이에 이혼하고 아이를 혼자 키워야 했다.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채로 제로 헝거 사업에 참여했다. 이 사업을 통해 그녀는 처음에 염소 세 마리를 받아 길렀다. 정성스레 기른 염소 세 마리는 새끼를 낳았고, 그 새끼가 자라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렇게 계속 기르고 팔아 그녀는 총 40여 마리의 염소를 소유하게 됐다. 처음에 받은 염소 세 마리는 WFP에 돌려줬다. 그녀가 돌려준 세 마리 염소는 이제 또 다른 주민의 소득증대 자원이 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소득증대를 통해 그녀는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았다고 했다.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지했던 예전의 삶을 버리고 새로 태어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좋아했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옛집 옆에는 그녀가 지은 튼튼하고 큰 새집이 있다. 소득증대의 방법을 알게 된 그녀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소득을 높여 나가고 있다.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라 말하면서 이제 매일 굶주릴 걱정 없이 하루를 보낸다고 행복해했다. 무엇보다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녀의 아이가 다시는 굶주림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는 사실이었다.
주민 여럿이 힘을 합쳐 소득증대를 이룬 사례도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주민들은 마을 공동체 금융 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 모두가 소득 증대의 성과를 함께 이뤘다. 이 사업은 10∼20여명의 주민이 소액을 공동으로 저축해 필요한 자금을 조성하는 개발협력사업이다. 특별한 기술 없이도 참여할 수 있으며, 매주 소액을 저축하면 필요한 목돈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개발협력사업 현장에서는 이런 방식이 자주 실행된다.
이 사업을 통해 마련된 자금으로 주민들은 다양한 소득 증대 사업을 시도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활동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돈을 활용해 작은 상점을 열거나 평생 꿈꿔온 창업을 한 주민도 있었다. 이들의 목표는 굶주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좀 더 나은 삶이었다. 대다수의 참여자는 이 사업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능력에 따라 자본이 분배된다고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흔히 아프리카의 가난이 게으른 국민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도 개발협력 현장에서 활동하던 초기에는 '왜 이들은 한국인처럼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 하지만 개발협력 현장에서 직접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의 가난은 국가와 사회의 구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그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열심히 일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마을 공동체 금융 사업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목돈을 손에 쥔 주민들은, 그들의 꿈을 위해 그 돈을 투자하고 열심히 일한 끝에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선진국에서 태어날 때부터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고 성공을 향해서 노력할 수 있는 사람과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단 한 번의 기회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을 비교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는다.
개발협력사업은 아프리카의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며, 꿈꿀 수 있는 '첫 번째 기회'를 주고 있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