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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그룹이 늘어나면서 응원봉, 팬덤명 등 개별 그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각종 '상징'이 충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유사성은 피한다는 불문율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지만 상징색 등 일부 아이템은 한정된 자원 탓에 겹치기 논란을 달고 다닌다.
지난달 그룹 'QWER'이 응원봉 디자인을 발표하자, 그룹 '더보이즈'가 2021년부터 사용한 확성기 형태의 응원봉과 형태가 겹친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더보이즈 팬덤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14일까지 QWER 소속사 사옥 앞에서 7차례 트럭 시위를 벌였다.
더보이즈를 옹호하는 측은 '먼저 확성기 형태의 응원봉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고유 정체성이 침해됐다고 주장한다.
인스타그램 이용자 'xun***'은 더보이즈의 확성기 모양은 기존 아이돌 그룹 응원봉 중 존재하지 않았던 모양"이라며 "QWER의 응원봉은 더보이즈 응원봉의 실루엣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아이돌 문화는 팬덤명·응원봉 등을 겹치게 하지 않는 것이 기본 규칙"이라고 덧붙였다.
엑스(X·구 트위터) 이용자 'j_v***'도 "응원봉은 가수가 어두운 공연장 안에서 팬을 찾는 용도로도 쓰인다"며 "멀리서나 어두운 곳에서 봐도 확성기 모양은 더보이즈밖에 없었는데 한 개 더 생긴 게 문제 아니냐"고 지적했다.
반면 인스타그램 이용자 'hih***'는 "이전 앨범 활동 중 확성기를 사용한 데서 따와서 응원봉을 만든 걸 표절이라 할 수 있느냐"며 "더보이즈가 확성기를 만든 것도 아니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QWER 소속사는 해당 응원봉이 디자인·저작권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더보이즈 소속사는 법적 절차 등 강력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응원봉은 K팝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한 대표적 도구다. 흔히 상단의 조명과 하단의 손잡이 형태로 구성된다. 어두운 공연장에서 잘 보이는 데다, 겹치기 쉬운 상징색 대신 디자인을 통해 그룹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장점에 기존의 풍선 응원을 대체했다. 중앙 제어를 통해 팬들이 든 응원봉의 색이 일사불란하게 변하는 '응원봉 연출'도 가능하다.
지난 겨울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시위에서 2030 여성들이 촛불 대신 형형색색의 K팝 응원봉을 들면서 응원봉은 비폭력과 연대의 상징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아이돌의 응원봉을 둘러싼 유사성 논란은 앞서도 있었다.
2023년 그룹 '라이즈'의 응원봉 디자인이 논란 속 교체됐다. 당시 응원봉의 초기 디자인이 공개되자, 라이즈의 팬들은 그룹 '에픽하이'의 응원봉인 '박규봉'과 손가락 형태가 겹친다는 이유로 변경을 요구했다. 이후 라이즈의 응원봉은 다른 형태로 변경됐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월에는 한 태국 가수가 그룹 '플레이브'의 응원봉 디자인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플레이브의 팬들이 변경을 요구했다.
응원봉의 독창성·고유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19일 현재 특허정보검색서비스 키프리스(KIPRIS)에 '응원구'·'응원봉'을 검색하면 각각 65개와 50개의 디자인 지식재산을 찾을 수 있다.
응원봉 이전에는 상징색을 둘러싼 충돌이 있었다.
2000년대 '젝스키스'는 노란색, '에이치오티'(H.O.T)는 흰색, '지오디'(god)는 하늘색 등을 상징색으로 내세웠고, 팬들은 이들 상징색을 이용한 풍선을 흔들며 응원했다.
그러다 후배 그룹이 선배 그룹과 유사한 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면 신경전이 펼쳐졌다.
1998년 데뷔한 '신화'의 상징색은 주황인데, 2015년 데뷔한 '아이콘'의 응원봉 색이 주황색으로 정해지자 신화 멤버들이 SNS를 통해 해당 색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또 같은 해 그룹 '비투비'의 상징색이 하늘색인 것을 두고 그동안 하늘색을 상징색으로 써온 지오디의 팬들이 비투비 측에 항의하는 일도 발생했다.
팬덤명(팬클럽명)도 논란이다.
그룹 '아일릿'은 지난해 2월 팬덤명을 '릴리'로 정했다가 그룹 '엔믹스'의 멤버 릴리와 이름이 같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팬덤명을 '릴리즈'로 변경했으나 이번에는 '블랙핑크'의 멤버 리사의 개인 팬덤명과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아일릿은 '글릿'으로 팬덤명을 결정했다.
작년 9월에는 '블랙핑크'의 멤버 제니가 자신의 공식 SNS에서 팬들을 '루비즈'로 부르면서 논란이 일었다. 루비즈가 팬덤명으로 정해질 경우 그룹 '아이즈원' 출신 멤버 권은비의 팬덤명과 같기 때문이다. 이후 제니의 소속사는 '루비즈'가 팬덤명이 아니라 제니의 소식을 팬들에게 알리는 뉴스 페이지의 이름이라고 해명했다.
그에 앞서 2019년 중앙대 서울캠퍼스 제62대 총학생회는 '중앙인에게 웃음을 전하고 중앙인이라는 돛에 바람을 불어가는 총학생회가 되겠다'며 이름을 'WIN:D'로 정했다가 '워너원' 멤버 김재환의 팬과 소속사의 항의를 받았다.
'WIN:D'가 김재환의 개인 팬덤명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해당 총학생회는 사과문을 발표한 후 이름을 변경했다.
민희진 전 어도어뮤직 대표는 작년 10월 하이브와의 소송 과정에서 대리인을 통해 그룹 '아일릿'의 콘셉트와 안무 등이 그룹 '뉴진스'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일릿의 소속사인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은 이를 부인하며 민 전 대표를 업무방해·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한국연예제작자협회는 지난달 29일 성명을 통해 "K팝 산업의 창의성, 정체성,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의 기반은 아티스트, 팬덤, 기업, 그리고 문화산업 전체가 함께 만드는 지적재산권의 존중과 상호 신뢰에 있다"며 "더보이즈와 QWER 공식 응원봉 디자인 유사성 논란은 단편적 모방·분쟁 차원을 넘어 K팝 굿즈 문화의 미래, 팬덤 간 공동체 의식, 글로벌 한류 경쟁력에 중대한 울림을 주는 계기"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지식재산권과 창의성 보호를 위한 업계 합의와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며 "각 소속사와 아티스트, 팬덤의 유의미한 창작적 자산에 보호 장치가 명확히 적용될 수 있도록 표준 가이드라인 마련을 적극 촉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K팝 문화적 힘은 다양한 창의성의 공존과 생태계의 선순환에 있다"며 "'정체성은 지키고 창의성은 꽃피우는 산업환경' 마련에 모든 관계자가 책임 있는 자세로 임할 것을 촉구한다"고 당부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청년들이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K팝 아이돌의 상징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타의 상징이 중복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색·콘셉트 등은 지금까지는 아이디어 차원에서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판단했더라도, 그 자체가 상품성을 띠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사법부에서 기준을 세우는 것이 유사한 사례의 방향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이돌이 초기에 정했던 디자인과 색감 등에 천착하기보다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유연하게 다양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youknow@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