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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가요계의 거목들이 잇따라 마이크를 내려놓고 있다. 이미자, 나훈아, 임재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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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은 지난 4일 JTBC '뉴스룸'과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가요계 은퇴를 공식화했다. 현재 진행 중인 데뷔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나는 임재범이다'를 끝으로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지난해 11월 29일 대구를 시작으로 인천, 부산 등지를 거쳐온 이 투어는 17~18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 공연을 포함해 오는 5월 앙코르 공연으로 마무리된다. 해당 앙코르 무대가 사실상 임재범의 마지막 공연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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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열린 서울 공연에서 나훈아는 "마이크를 내려놓는다는 결정이 살면서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미 6년 전부터 은퇴를 고민해왔다는 고백처럼, 나훈아의 퇴장은 충동이 아닌 '실행'이었다. '박수칠 때 떠나겠다'는 말이 실제 행동으로 완결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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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조심스럽게 퇴장한 이는 '엘리제의 여왕' 이미자였다. 이미자는 끝까지 '은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지난해 3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공연으로 마무리를 충분히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지막'을 언급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전통가요 헌정 공연-맥을 이음'을 통해 데뷔 66주년 무대를 사실상 마지막 공연으로 마무리했다.
특별한 점은 이 무대가 고별 콘서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미자는 전통가요의 맥을 이어갈 후배들을 무대 위로 불러 세우며, 자신의 노래와 시대를 '대물림'하는 방식으로 퇴장을 택했다. 개인의 마침표가 아닌, 장르의 연속성을 남기는 선택이었다.
이들의 은퇴를 이해하려면, 먼저 이들이 어떤 이름이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임재범은 1986년 록 밴드 시나위 보컬로 데뷔해 '비상', '고해', '너를 위해' 등으로 한국 대중가요에서 보기 드문 록 기반 보컬의 정점을 찍었다. 특히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를 통해 '호랑이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후에도 JTBC '비긴어게인', '싱어게인'시리즈 등에 참여하며 후배 가수들과 호흡을 이어왔다.
나훈아는 1966년 '천리길'로 가요계에 데뷔,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잡초', '무시로', '고향역', '대동강 편지', '갈무리', '홍시', '땡벌', '남자의 인생', '한백년', '테스형!' 등 히트곡만 무려 120곡을 남겼다. 무엇보다 트로트를 '국민가요' 반열로 끌어올린 인물로, 나훈아 노래는 늘 시대의 감정과 사회의 언어를 품어왔다.
이미자는 한국 전통가요의 역사 그 자체로,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노래로 대변해온 보컬리스트다. '열아홉 순정' 이후 66년, '동백아가씨', '여자의 일생', '기러기 아빠', '황혼의 블루스', '여로', '서울이여 안녕', '모정' 등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장르의 뿌리를 지켜왔다. 문화예술인으로서 최고의 영예인 대한민국 대중 가수 최초의 유일한 금관문화훈장 수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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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들의 은퇴는 '끝'이라기보다 '위치의 변화'로 보인다. 더 이상 공연장의 중심에 서지는 않지만, 방송 등 다른 활동으로는 열어놨기 때문. 무엇보다 대중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점이 관심사다. 가요계 레전드들의 퇴장은 더 머물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막을 내리는 방식으로 기록되는 중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이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업계에서는 체력이나 인기의 소진보다, 시대의 변화로 진단하고 있다. 음원 중심의 소비 구조, 빠르게 순환되는 유행, 알고리즘과 바이럴이 좌우하는 무대에서 이들은 더 이상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노래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공연은 여전히 가능했지만, '매번 증명해야 하는 자리'가 되어가는 환경은 이들이 익숙했던 가요계와 달랐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에 개인의 시간에 대한 자각도 겹쳤다. 세 사람 모두 "더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지금이 가장 나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은퇴의 이유를 외부 조건이 아닌 자기 판단으로 돌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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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레전드'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누군가는 멈춤을 선택했고, 누군가는 여전히 변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미자, 나훈아, 임재범의 퇴장은 더욱 선명해진다. 이들은 떠나는 순간에도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분명히 했다. 임재범은 '노래할 수 있을 때 내려오는 것'을 품위로 삼았고, 나훈아는 '박수칠 때 떠난다'는 원칙을 끝내 실행으로 증명했다. 이미자는 '은퇴'라는 단어는 거부했지만, 전통가요의 맥을 다음 세대에 넘기는 방식으로 마지막 무대를 설계했다.
어쩌면 멈추지 않겠다는 선택이 존중받는 시대, 세 사람은 오히려 멈추는 용기를 택했다. 더 머물며 희미해지기보다, 가장 선명한 순간에 등을 돌리는 선택. 언제까지 노래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떠날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해석된다.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