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광'이던 아버지를 따라서 스키장에 갔다가 초3 때 스노보드에 입문한 유승은(18·성복고)은 빠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2023년 카드로나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주목을 받았다. 불모지나 다름 없던 빅에어 종목에 등장한 초신성이었다.
거칠 것이 없었다. 2024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린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서 시니어 데뷔전을 치렀다. 당당히 예선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결선에서 넘어져 복사뼈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보드 인생 첫 시련이었다. 부상으로 1년간 재활에 꼬박 매달렸다. 하지만 2025년 2월 하얼빈 동계아시안게임에 무리해서 출전했다가 같은 부위를 또 다시 다쳤다. 7월에는 일본에서 훈련을 하다 팔꿈치가 탈골됐다. 엎친데 덮쳤다. 계속된 부상으로 복귀가 당초 예상보다 더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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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재활 끝에 마침내 지난해 11월 설상 훈련에 복귀했다. 하지만 시련은 계속됐다. 훈련 이틀 만에 오른 손목이 부러진 것. 17세 소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아픔이었다. 처음으로 '스노보드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상심이 컸다.
유승은은 포기하지 않았다. 발목 재활을 도와줬던 트레이닝 스태프가 공항까지 찾아와 유승은을 붙잡았다. 가족들의 응원도 외면할 수 없었다. 유승은은 급히 귀국해 수술대에 올랐다. 뼈를 고정하는 핀을 손목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승은은 깁스를 착용한 채 2025년 12월 미국 콜로라도주 스팀보트 스프링스에서 열린 월드컵에 나섰다. 제대로 사고를 쳤다. 준우승을 차지했다. 금메달을 딴 오니쓰카 미야비(일본)와의 차이는 불과 0.75점이었다. 한국 선수가 빅에어 종목에서 월드컵 은메달을 수확한 것은 유성은이 처음이었다. 1년 2개월의 긴 시련을 뚫고 얻어낸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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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빅에어는 '설원의 도마'로 불린다. 건물 10층 옥상 높이인 30m에서 활강한 뒤 점프대를 타고 뛰어올라 공중에서 기술을 펼쳐야 한다. 당연히 부상 위험도 크다. 헬멧이 깨지고, 뇌진탕을 입을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 착지를 잘못하면 다리뼈가 부러지기도 한다.
평소 겁이 없는 유승은도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거나 날씨가 좋지 않을 때면 두려움을 느낀다. 부상을 경험한만큼, 그 두려움의 강도는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때마다 유승은을 깨운 것은 가족, 그리고 올림픽이었다.
놀라운 상승세에 도박사들도 그를 주목했다. 유럽 스포츠 베팅 업체는 유승은을 금메달 유력 후보로 꼽으며, '배당 대비 가치가 가장 높은 언더독'이라고 했다. 예상대로였다. 유승은은 예선부터 펄펄 날았다. 합산 166.50점으로 29명 중 4위를 기록, 상위 12명에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잡았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참가한 유승은은 최초의 결선 진출까지 이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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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망의 결선, 유승은은 제대로 사고를 쳤다. 유승은은 10일(이하 한국시각)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 파크에서 열린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빅에어 결선에서 171.00점을 얻으며 동메달을 획득했다. 1차 시기에서 백사이드 트리플콕 1440도를 완벽하게 성공시키며 87.75점을 얻은 유승은은 2차 시기에서 프런트사이드 트리플콕 1440도까지 멋지게 마무리했다. 2차 시기 성공 후에는 보드를 던지는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1, 2차 시기 합계 171.00점을 받으며 1위에 올라섰다.
마지막 주자로 3차 시기에 나선 유승은. 이미 포디움을 확정지었고, 금메달을 위해서는 앞선 점프보다 8.25점이 필요했다. 프런트사이드 트리플콕 1440도를 뛰었지만, 착지가 아쉬웠다. 그럼에도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유승은은 활짝 웃으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련을 이겨낸 유승은은 생애 첫 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스노보드 프리스타일 역사상 첫 메달리스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