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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경기 후 이도영 수석코치를 끌어안고 울었다.
진대성은 스스로 굴곡 많은 축구인생을 보냈다고 했다. 대학 입학때부터 꼬였다. 전주대에 특기생으로 입학하는 대신 K3-리그의 전주 EM팀으로 들어갔다. 실망하지 않았다. 경기에 더 많이 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성적도 나왔다. 3학년때 전주대 축구부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대회에 등록도 안되는 등 설움도 많았다. 열심히 뛰며 조금씩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번외라도 프로에 지명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당당히 2012년 드래프트 2순위로 제주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좀처럼 출전을 하지 못했다. 당시 제주의 공격진이 화려했다. 남준재가 벤치에 앉을 정도였다. 어쩌다 기회를 주어지면 부상으로 날리기 일쑤였다. 2군에서 고생만했다. 2년차가 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내셔널리그의 명문팀 울산현대미포조선에서 임대제의가 왔다.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텃세가 심했다. 기존 선수들이 K-리그 클래식에서 임대온 선수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초반엔 부진했다. 죽기살기로 뛰며 8골-2도움을 올렸다. 팀은 내셔널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힘든 상황속에서도 축구의 끈을 놓지 않은 이유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언젠가 빛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를 보면서도 '왜 저것 밖에 못하지'라고 생각했다. 물론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그는 대학교 때 우연히 책을 봤는데 '생생하게 꿈을 꾸면 이뤄진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그 뒤로 한번도 이미지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 자신이 꿈꿔왔던, 항상 머릿속에 그렸던 프로데뷔골이 3년만에 이루어졌다. 그는 또 한번 꿈을 꾼다. 대표팀에 한번 발탁되는게 목표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가슴에 태극마크가 있는 상상을 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