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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의 아이들'이 첫 월드컵에서 16강 탈락의 쓴잔을 들이켰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뜨거운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자란 이들은 대한민국 축구의 '황금세대'로 불렸다. 2년전 런던 미라클을 이루고 환호했던 선수들은, 하지만 브라질에서 통한의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첫 실패를 맛봤다. 브라질에서의 그들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브라질월드컵, 두번째 경기 알제리전 전반 그라운드는 '아노미'였다. 스피디한 공격축구로 나선 알제리에 맞서 허둥지둥, 우왕좌왕하다 전반에만 연거푸 3골을 내줬다. '센터백 듀오' 홍정호(아우크스부르크)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이 나란히 달리고도 이슬람 슬리마니에게 선제골을 내준 장면은 차라리 굴욕이었다. 알제리전까지 수비수들은 카드 한장 받지 않았다. 모든 것을 걸고 맞서야할 경기에서 쓸데없이 생각이 많았다. 톱시드도 아닌 알제리에게 당한 2대4의 패배, 11대10으로 싸운 벨기에전(0대1 패)에서 보여준 공격진의 무능보다 더 속상했던 것은 시종일관 답답했던 경기내용이었다. 세트플레이도, 협업도 실종됐다. 런던에서의 절실함, 한발 더 뛰는 원팀의 투혼, 위기관리 능력이 브라질에선 없었다. 날아오는 공에 몸을 피하거나 멀뚱 서서 바라보는 장면, 뒤로 공을 돌리는 습관, 반박자 늦은 크로스, 템포를 죽이는 패스타이밍 등 안타까운 장면이 매경기 속출했다. '월드클래스'에 걸맞지 않았다. "알제리전 전반 플레이는 경기장에 뛰었던 선수로서 부끄러움 가득이었다"는 '캡틴' 구자철의 절절한 고백대로였다. 2012년 런던에서 개최국 잉글랜드를 몰아세우던 불굴의 정신은 빛이 바랬다. 한일월드컵 4강 진출후에도 "아임 스틸 헝그리(I'm still hungry, 아직도 배가 고프다)"를 외치던 히딩크의 절박함이 필요했다.
최종 엔트리 23명 중 무려 17명이 해외리그 선수들로 구성됐다. 한국 월드컵 사상 최다였다. 20명의 필드 플레이어 중 K-리거는 이근호(상주) 김신욱, 이 용(이상 울산) 등 3명이 전부였다. 런던올림픽 이후 '해외파'는 급증했다. 기존의 박주영 기성용 이청용(볼턴) 지동원 손흥민(레버쿠젠) 외에 구자철 홍정호 김영권 윤석영 박종우(광저우 헝다) 등이 잇달아 해외 진출의 꿈을 이뤘다. 연봉은 폭등했고, 눈높이도 한껏 높아졌다. 국민들의 기대치도 덩달아 높아졌다. 중요한 건 '내실'이다. 해외진출 후 프로로서 얼마나 성장했는가.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끌어올렸는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난 시즌 레버쿠젠에서 31경기 10골을 터뜨리며 눈부신 몸값 상승을 이룬 손흥민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경기력, 체력면에서 오히려 후퇴했다.
공격진의 부진은 골 기록을 보면 이해가 간다. '원톱' 박주영의 소속팀에서의 마지막 골 기록은 셀타데비고 시절인 2013년 3월15일이다. 지동원은 1월 25일 도르트문트전 동점골, 구자철은 2월1일 프라이부르크전 골에서 멈춰섰다. 김보경은 지난해 11월24일 맨유전에서의 골이 마지막 기록이다. 소속팀에서 침묵했던 선수가 월드컵 무대에서 '반짝' 빛나는 요행은 없었다. 기대치가 높다보니 팬들의 비난 수위도 높았다. 상처받은 선수들의 플레이가 위축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근호 김신욱 김승규 등 K-리거들이 오히려 돋보였던 이유는 '절박함'과 '경기력'이었다. 올시즌 12경기에서 6골을 터뜨린 'K-리그 MVP' 출신 김신욱, 지난 4월 9일 서울전(2대1 승)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병장' 이근호의 경기력이 더 좋았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홍명보호는 첫 월드컵에서 개인기, 조직력, 전술의 격차를 절감했다. 아쉬운 점은 실력의 차이가 아니라, 100% 준비하지 못했고, 100%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홍명보호의 첫 월드컵 모토는 '후회하지 않는 것'이었다. 23인의 태극전사 스스로 가슴속에 단 1%의 후회도 남지 않았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최고의 순간 뒤에 위기가 찾아오듯, 위기 뒤엔 반드시 또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전영지기자 sky4u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