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증명해야 한다. 살 떨리는 경쟁을 이겨내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운도 필요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선수라고 해도 '높은 벽' 앞에 눈물을 삼키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모두가 원하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성남의 원톱 황의조(24)는 또 태극마크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2015년 동아시안컵 예비명단 50인에 이름을 올려 사상 첫 태극마크의 꿈을 꿨다. 그러나 20일 슈틸리케 감독이 손에 든 23명의 최종명단에 황의조의 이름은 없었다. K리그 클래식 19경기서 8골을 터뜨리며 득점랭킹 3위의 성적을 올린 만큼 자격은 충분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흔들진 못했다. 아직까진 '미완의 대기'라는 시선을 걷어내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진격의 거인' 김신욱(27·울산)을 호출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의 환희 뒤 부상으로 긴 침묵의 시간을 보냈던 김신욱은 시즌 초반만 해도 슈틸리케 감독의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득점 감각을 끌어 올리며 슈틸리케호 승선 준비를 마쳤음을 증명했다. 12팀 중 10위로 처진 소속팀 울산의 부진은 김신욱도 피할 수 없는 그늘이었다. 하지만 아시아 최고의 장신 공격수로 꼽히는 김신욱은 슈틸리케 감독이 거부할 수 없는 '히든카드'였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신욱을 꾸준히 지켜봐 왔다. 인천아시안게임 부상 이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올초까지도 본인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근 활약을 지켜본 결과 체력적으로 문제가 없었다. 리그에서 8득점을 한 것도 긍정적인 신호였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태극마크를 두고 희비가 엇갈린 두 공격수는 22일 오후 7시30분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릴 2015년 FA컵 8강전에서 정면충돌 한다. '승리가 아니면 패배'인 단판승부 FA컵의 묘미는 두 스트라이커의 맞대결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었다. 황의조와 김신욱 모두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 패배 뿐만 아니라 탈락이라는 멍에를 써야 한다.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두 공격수는 지난 6월 27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시즌 처음으로 맞대결을 펼쳤다. 황의조와 김신욱 모두 선발로 나서 전후반 90분을 모두 소화했다. 공격포인트 작성에는 실패했으나, 팀의 1대0 승리에 일조한 황의조의 '판정승'이었다.
황의조는 이번 FA컵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의 평가를 뒤집는다는 각오다. 중앙 뿐만 아니라 측면까지 소화 가능한 다재다능함으로 울산의 골문 열기에 도전한다. 슈틸리케호에 승선한 김신욱의 의지도 남다르다. 동아시안컵 최고참의 역할을 맡긴 슈틸리케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선 이번 FA컵 활약이 기준점이 될 만하다. 후반 종료 휘슬이 울린 뒤 두 공격수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