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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패배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아내는 잘했다고 하는데, 아들은 일본에 지고 나니 말도 없더라."
그는 지난해 1월 이광종 감독이 급성 백혈병으로 도중하차한 직후 올림픽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다. 1년 전을 되돌아보면 이제는 추억이지만 그 당시는 짙은 안갯속이었다. 선수들이 머리 속에 없었다. 올림픽 예선이 토너먼트 대회로 변경돼 본선 진출도 장담할 수 없었다. 백지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신화도 부담이었다.
신 감독은 매사 긍정적이고, 공격적이다. 올림픽 감독 제의도 피하지 않았다. 선수들이 소집되면 '나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카타르 도하에선 '다함께'를 추가했다. "다함께 하면 누구와 맞닥뜨려도 두렵지 않다.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를 강조하려고 '다함께'라고 외쳤다."
김성원, 박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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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일본이라면 가슴에 묻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솔직히 이번 기회에 처참히 짓밟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만큼 3~4골을 넣어 일본 축구를 박살내는 경기로 만들고 싶었다. '너네 죽었어, 3~4골은 기본이야', 이걸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역대 한-일전서 3대0, 4대0이 없었다. 전반이 끝난 후 '이대로만 하면 더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너무 앞섰고, 욕심이 너무 컸다. 좋은 보약이 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역전골을 허용한 후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안났다. 그래도 따라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다 주지 않는구나, 리우에서 더 잘해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1%라도 방심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더 큰 뜻이 있을 것 같은데.
요르단전(8강전)이 끝난 후 '과감해져야 한다. 정에 이끌리면 안된다'고 수첩에 썼다. 하지만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후 다시 정에 이끌렸다. 지금도 후회하는 부분이다. 선수를 기용할 때 더 냉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감독이 그렇지만 '정에 이끌리면 망가질 수 있구나'하는 교훈을 얻었다. 어제 집에 가서 다시 요르단전과 일본전의 메모를 꺼내봤다.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할 것이다.
-한-일전보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이 더 큰 역사다.
한-일전 패배로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웃음). 사실 처음에는 리우행 티켓만 따자고 했다. 그런데 세계 최초 8회 연속 진출이라고 하니까 부담이 더 컸다. 올림픽 진출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1년 전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더 남다를 것 같다.
처음에는 앞뒤 가리지 않고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막상 수락하고 검토해보니까 경기에 뛰는 선수들이 없었다. 저질러놨는데 수습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많았다. 지난해 6월 유럽 원정에서 프랑스, 튀니지와 경기를 치른 후 비로소 자신감이 생겼고, 가능성도 봤다.
-개최국 카타르와 4강전에서 만난 것은 부담스럽지 않았나.
언론에선 카타르가 어려운 상대라고 했지만 속 마음은 달랐다. 현지에서 카타르의 경기를 보면서 자신이 있었다. 사실 (카타르와 8강전서 탈락한) 북한이 더 신경쓰였다. 북한은 한국이랑 붙으면 다 쏟아낸다. 북한보다 카타르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광종 감독과는 연락했나.
아직 통화를 못했다. 보너스 받으면 십시일반 모아서 나누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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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가 최고의 관심이다.
와일드카드는 3장을 모두 다 쓸 것이다. 골키퍼가 아닌 필드 플레이어로 3명의 와일드카드를 기용할 예정이다. A대표 선수 가운데 뽑을 계획이다. 다만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나눠서 뽑는게 아니라 상황을 봐서 결정할 것이다.
-아무래도 올림픽과 군 면제 문제를 연결할 수 밖에 없는데.
군 면제와 연결해 선수를 뽑지는 않을 것이다. 와일드카드는 군 면제 여부를 떠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선수를 뽑아야 한다. 미리 접촉해서 올림픽 출전에 마음이 없다면 안 뽑을 것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도 그렇지만 현지 적응이 결코 녹록지 않다.
나름 브라질을 많이 간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잘 체크해야 한다. 홍명보 감독님에게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볼 것이다.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브라질월드컵도 경험한 선배다. 명보 형이 많은 조언을 해줬으면 좋겠다.
-리우올림픽의 목표는.
메달을 미리 얘기하면 혼난다(웃음). 그래도 목표는 높아야 밑에라도 간다. 목표는 늘 최고여야 한다. 일단 조별리그 통과부터 잘 준비하겠다.
-도하 대회 참가하지 않은 23세 이하 선수는 안 뽑는다고 했는데.
내부 방침은 그렇게 세웠다. 그러나 이번 대회 참가 선수들에게도 전제조건이 있다. 소속팀에서 경기를 안 뛰면 경기력이 너무 떨어져 대표 선수로 뽑을 수 없다. 그래서 이번 대회 마치고 해산하면서 선수들에게 '15명을 뽑아야 하는데 이제는 너희 스스로 경쟁'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번 대회에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도 경기에 꾸준히 나선다면 분명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23세 이하 선수 가운데 최종엔트리에 포함될 15명은 보이나.
우승 못하면서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과의 공조도 중요한 것 같다.
슈틸리케 감독은 나랑은 편하게 얘기하는 관계다. 슈틸리케 감독이 대회 후 잘했다고 하더라. 목표를 달성했고,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면서 낙심하지 말라고 하더라. 라커룸에서 격려해줬다. 3월 A매치 데이의 경우 A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으로 이원화 할 것 같다. 슈틸리케 감독이 휴가에서 돌아오면 상의할 것이다. 와일드카드를 3월 평가전부터 가동할지도 얘기해야 한다.
-계속해서 공격축구할 것인가.
신태용 축구는 유지할 것이다. 다만 수비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느꼈다. 수비가 안정되지 않으면 공격 축구를 못한다. 토너먼트 대회의 첫 번째 관건은 수비다. 보기 좋은 축구보다 이기는 축구에 초점을 맞추겠다. 전술은 스리백, 포백 등 다양하게 유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선수들에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아니라 소속팀 감독님한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 보여라. 그래야 너희들이 산다. 선수는 뛰어야 한다. 또 하나 각 팀 감독님들께 선수들을 뛰게해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다. 다만 소속팀에서 못 뛰면 챌린지나 하위권 팀으로 임대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골짜기 세대'라고 했지만 분명 경쟁력을 보여줬다. 처음에는 갑갑했지만 한놈 한놈 튀어나오니까 재밌더라(웃음).
신 감독은 현역 시절 '그라운드의 여우'로 통했다. 꾀가 넘쳤다. 지도자로 보직을 변경한 후에도 2010년 성남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 2011년 FA컵 우승을 일궈냈다. 도하에서 세계 최초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달성하며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난 난 놈이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8월 '리우의 여우'로 변신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