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FA컵은 1871년 시작된 세계 최고(最古)의 축구대회다. 그 당시 획기적이었던 '지면 탈락'이라는 토너먼트제를 택했다. FA컵은 영국 축구의 자존심이다. 과거 FA컵은 온 영국의 축제였다. 결승전에는 여왕이 직접 나와 선수들을 격려했고, 아침부터 결승전에 나서는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기도 했다. 그 특별한 자부심을 더해주는 특별한 룰이 있다. 바로 재경기다.
FA컵은 무승부 시 연장전, 승부차기로 승부를 가리는 대신 원정을 왔던 팀의 홈경기장에서 재경기를 갖는다. 1990년대까지는 재경기에서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을 때 한 팀이 승리할 때 까지 계속 재경기를 치르게 되어있었으나, 현재는 연장전 후 승부차기로 승패를 가른다. 1975년 풀럼은 무려 6번이나 재경기를 치르며 역대 가장 많은 재경기를 치른 케이스로 남아있다. 1991~1992시즌 재경기 간격이 3~4일 후에서 최소 열흘 후에 치르도록 조정되자, FA는 준결승과 결승전에서는 재경기를 치르지 않도록 했다.
하지만 FA컵 재경기는 최근 존폐의 기로에 섰다. 영국 국영방송 BBC는 17일(한국시각) 'FA가 현재 시행하고 있는 FA컵 재경기와 주중 리그 경기를 치르는 것에 대해 변화를 줄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유는 경기수 감소를 위해서다. EPL팀들은 최근 유럽챔피언스리그, 유로파리그 등 유럽클럽대항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른 빅리그에는 없는 리그컵 뿐만 아니라 FA컵 재경기까지 소화하며 선수들이 혹사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빅클럽들은 한해 60경기에 가까운 경기를 소화해야 한다. 지난해 잉글랜드 땅을 밟은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이 재경기 룰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FA컵 재경기가 부담스럽기는 중소 클럽도 마찬가지다. 앨런 파듀 크리스탈팰리스 감독은 "비기면 재경기라는 FA컵 조항은 부당하다. EPL은 세계에서 가장 긴장도가 높은 리그다. 제발 FA와 EPL사무국이 만나 일정에 대해 협의해 달라. 감독들은 미칠 지경"이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FA는 FA컵 재경기 폐지로 인한 경기수 감소가 잉글랜드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FA컵만의 정통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반대하는 이들의 주요 이유다. 재밌는 것은 이번에 재경기로 골머리를 앓게 된 벵거 감독이 누구보다 강한 어조로 재경기 폐지를 반대했다는 점이다. 벵거 감독은 "나는 오랜 시간 FA컵의 방식에 의해 예방주사를 맞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보수적인 영국인이 됐다"며 "나는 경기 방식을 바꾸려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왜냐하면 나는 현재 방식이 좋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더 많은 돈을 모으길 원하면서, 최대한 적게 경기하려 한다. 이는 모순이다"라고 반대하는 이유를 공개했다. 이어 "다음 시즌 EPL은 더욱 많은 돈을 얻게 된다. 그것은 모든 구단들이 최고 수준의 25인 로스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현 방식이 구단 간 경쟁을 강화하고 있다 생각하기에 굳이 바꿀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과연 FA컵 재경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