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발품스토리]FA컵 결승, 꿈 경험 그리고 이청용

기사입력 2016-05-22 08:48



[웸블리(영국 런던)=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한 쪽은 꿈을 꿨다. 그에 대적하는 쪽은 여유로웠다. 치열한 승부를 펼쳤다. 90분을 넘어섰다. 120분만에 승부가 갈렸다. 경험의 승리였다. 환호와 아쉬움이 오갔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다.

21일 2015~2016시즌 FA컵 결승전이 열린 영국 런던 웸블리로 향했다. 맨유와 크리스탈 팰리스의 맞대결. 그 현장을 다녀왔다.

새로운 꿈

웸블리로 향하는 메트로폴리탄 라인 전동차 안. 크리스탈 팰리스의 팬들은 들떠 있었다. 다들 꿈을 꾸고 있었다. 크리스탈 팰리스는 1989~1990시즌 이후 26년만에 FA컵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상대도 맨유였다. 재경기를 펼친 끝에 맨유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는 설욕하고자 했다. 크리스탈 팰리스를 이끌고 있는 앨런 파듀 감독은 당시 경기에 뛰었다. 선수 때의 한을 감독이 돼서 풀겠다는 각오였다. 웸블리 파크역에 내린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경기장으로 나아갔다. 맨유 팬들도 맞대응했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크리스탈 팰리스의 한 팬은 "단판 승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 팀도 좋은 팀이다. 충분히 해볼만 할 것. 기대한다"고 했다.

맨유 팬들은 여유가 있었다. 다만 고민이 숨어있었다. 팀을 봤을 때는 우승을 원했다. 그런데 우승을 하면 루이스 판 할 감독이 계속 지휘봉을 잡을 수도 있다. 맨유 팬들 사이에서 판 할 감독은 인기가 없다. 리그에서도 부진했다. FA컵에서도 겨우거우 올라왔다. 다들 판 할 감독을 잘라야된다는 분위기였다. 옷에 맨유의 엠블럼을 새긴 팬은 "우승도 중요하지만 판 할 감독도 보기 싫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경험의 승리

경기 시작 전 크리스탈 팰리스 팬들은 화려한 카드 섹션으로 기선을 제압했다. 맨유팬들마저도 카드섹션을 핸드폰에 담느라 바빴다. 하지만 한순간 분위기가 맨유 쪽으로 기울었다. 한 인물의 등장 때문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경. 이날 FA컵 트로피를 들고나온 이는 퍼거슨 전 맨유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이 등장하자 맨유 팬들은 엄청난 함성을 질렀다. 마침 피치 위에도 맨유와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있었다. 이날 중계방송을 맡은 BBC의 패널들이었다. 바로 폴 스콜스 그리고 리오 퍼디낸드였다. 퍼거슨 감독은 이들과 악수를 나눴다. 경기 전 분위기는 맨유 우승 분위기였다.


ⓒAFPBBNews = News1
경험이 승부를 갈랐다. 첫 골은 크리스탈 팰리스의 몫이었다. 후반 33분 제이슨 펀천이 골을 넣었다. 파듀 감독은 기쁨의 춤을 추기도 했다.


하지만 맨유는 이내 따라붙었다. 3분 후 후안 마타가 동점골을 넣었다.

경기는 연장으로 접어들었다. 연장 전반 종료 직전 크리스 스몰링이 레드카드를 받았다. 연장 후반 시작 전, 맨유 벤치가 움직였다. 판 할 감독이 아니었다. 라이언 긱스 코치가 주인공이었다.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다 몸을 틀었다. 그리고는 맨유 팬들에게 응원을 해달라며 손짓했다. 맨유 팬들은 엄청난 응원을 보냈다. 분위기 제압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5분 뒤 제시 린가드가 결승골을 넣었다. 경기 흐름을 놓치지 않았던 긱스의 경험. 그리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맨유 선수들의 경험이 적중했다.


4월 20일 사진. ⓒAFPBBNews = News1
아... 이청용

경기는 맨유의 2대1 승리로 끝났다. 맨유는 2004년 이후 12년만에 FA컵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팀 통산 12번째 우승이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으로 내려갔다. 이날 이청용은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내려갔다. 30분을 기다렸다. 크리스탈 팰리스 선수들이 나왔다. 출전 명단에 든 선수들은 모두 정장을 지나갔다.

이청용이 보였다.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출전 명단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용히 이청용을 불렀다. "잘 지냈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올 시즌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을 알고 있었다. 겨우 "올 시즌 고생 많았다"고 전했다. 이청용은 멋쩍게 웃었다.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전 인터뷰 하나로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감독을 비난했다며 벌금 처분을 받았다.

조심스레 향후 계획을 물었다. 질문 안에 모든 것이 포함돼 있었다. 이적 가능성까지도 담겨있었다. 이청용은 조심스럽게 "이제 시즌이 끝났다. 한 시즌을 정리해야할 때다. 추후에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었다. 걱정도 많이 해주었다. 너무 감사하다. 꼭 보답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이청용을 떠나보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이청용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그도 우리에게 행복을 많이 주었으니.


ⓒAFPBBNews = News1
그리고 무리뉴

경기장을 나왔다. 웸블리 앞 웸블리 파크 역은 인산인해였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400미터 가량 사람들로 가득했다. 지하철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수용하지 못해서다.

인근 웸블리 스타디움역과 웸블리 센트럴역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나마 조금 더 먼 웸블리 센트럴역의 사정이 나았다. 줄을 선 채 천천히 역안으로 들어갔다. 그 때 사람들이 웅성웅성됐다. 그러더니 몇몇 맨유팬들이 '조세 무리뉴'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냈다. 뉴스를 검색하더니 '무리뉴' 노래를 불렀다. BBC와 스카이스포츠 등이 무리뉴가 맨유에 부임한다고 보도했다. 사실상의 확정이었다. 맨유는 그렇게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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