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전]'숙연' 그리고 '책임' 잘츠부르크의 침울했던 밤

기사입력 2016-06-02 15:30


ⓒAFPBBNews = News1

0대5로 지고 있던 후반 38분이었다. 주세종의 슈팅이 스페인의 골망을 갈랐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레드불 아레나가 떠나갈듯한 함성이 터져나왔다. "대~한민국" 소리가 울려퍼졌다. 기쁨이 아니었다. 한풀이였다. 경기 내내 스페인에게 얻어맞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온 유일한 골이었다. 한국 팬들은 대승 분위기에 즐거워하던 스페인 팬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실력에 실망하던 오스트리아 현지 관중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있었다. 그 서러움을 풀어내는 함성이었다.

하지만 그 한 골이 있었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1대6의 대패. 1996년 12월 이란과의 아시안컵 8강전에서 2대6으로 대패한 이후 20년만의 6실점이었다. 한국 축구사에 남을 굴욕적 대패였다. 제 아무리 상대가 세계 최강 스페인이라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시뻘개진 얼굴로 기자회견장에 앉아있었다. 스페인을 상대로 기술, 전술, 정신력 모두 열세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그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휴가도 반납하고 훈련했다. 대표팀을 위해 희생했다. 책임은 내게 있다"고 했다. 이어 "스페인과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줄 몰랐다. 다른 세계에 있었다"고 평가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4일 후 다시 경기가 있다. 정신적으로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다. 잘 추스리고 두번째 경기에서 잘해야 한다. 중점적으로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시각 믹스트존에서는 한국 선수들이 나왔다. 다들 표정이 굳어있었다. 웃고 즐기던 스페인 취재진마저도 굳어진 선수들의 표정에 말을 잠시 멈췄다. 6실점한 김진현은 더욱 표정이 안 좋았다. 완전히 굳어버린 얼굴로 빠르게 믹스트존을 지나갔다.

주장인 기성용, 골을 넣은 주세종 그리고 윤석영만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에 응했다.

기성용은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의미를)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자기 반성이 이어졌다. "항상 큰 팀과 경기할 때 실수를 더 많이 한다"고 한 뒤 "실수가 계속 나오면 발전할 수 없다. 세계 무대에서 성적을 낼 수 없다"고 짚었다.

수비진에서 고군분투한 윤석영도 "실점에 대한 책임감이 크다. 수비와 허리가 조직적으로 움직였어야 했다"고 아쉬워했다.이날 유일한 골을 넣은 주세종은 "스페인은 좋은 팀이다. 선수 입장에서 많이 배웠다. 또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과제도 얻었다"고 말했다.

숙소로 향하는 대표팀의 버스 안은 조용했다. 경기장에서서 숙소까지는 60㎞정도다. 40분 거리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숙소 도착 후 식사를 하면서도 분위기는 침울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에게 "너희들은 잘못이 없다. 최선을 다해 뛰었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고개 숙이지 말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자"고 했다. 그래도 숙연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의 침울한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잘츠부르크(오스트리아)=이 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 bbadag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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