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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사람들에게 '한국 선수들은 잘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줬으면 좋겠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의 바람은 욕심이었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평가에도 고개를 들 수 없게 됐다. 슈틸리케호는 아시아 팀들을 상대로 최근 10경기 연속 무실점을 자랑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16경기 연속 무패(13승3무)는 '값진 훈장'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였다. 지휘봉을 잡은 후 첫 유럽 원정길에 오른 슈틸리케호의 현주소는 참담했다.
평가전은 평가전에 불과하다. 맞는 말이다. 전장인 그라운드에는 늘 희비가 교차한다. 패배도 숙명이다. 그러나 패전에도 품격이 있다. 한국 축구가 '이 정도 밖에 안되나'라는 탄식이 가득할 정도로 무색무취의 졸전이었다.
교체 아웃된 손흥민이 벤치로 들어오며 수건을 내동댕이쳤다. 팬들은 더했으면 더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흰 수건이라도 던져 기권을 했으면 하는 끔찍한 밤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대표팀을 위해 희생했다. 책임은 내게 있다"며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줄 몰랐다. 결과보다도 경기력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가 다른 대륙이지만 다른 세계의 축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암담해 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선수 육성을 잘 해야 A대표팀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결국 기술의 차가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부인할 수 없는 말이지만 현실 인식에선 아쉬움이 있었다.
스페인과 한국, 어차피 개개인의 기량 차는 누구나 예상했다. 그러나 의지는 다른 이야기다. 태극전사들이 가진 능력의 반도 보여주지 못한 경기였다. 투혼도 느낄 수 없었다. 명색이 유럽파가 6명 포진했다. 중국과 일본, 중동파가 10명인 데 비해 K리거는 4명에 불과했다. 눈에 띈 선수는 유일하게 골을 터트린 주세종(서울)과 어시스트 한 이재성(전북), K리거 둘 뿐이었다.
스페인전은 되돌릴 수 없다. 또 길을 가야한다. 슈틸리케호는 5일 오후 10시 체코 프라하 에덴아레나에서 체코와 두 번째 평가전을 치른다. 태극전사들은 2일 프라하에 입성했다. 체코는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29위(한국 54위)에 올라 있는 강호다. 한국의 체코와 4차례 맞닥뜨려 3무1패를 기록했다. 1승이 없다. 가장 최근 대결은 2001년 8월 15일이다. 거스 히딩크 감독 시절의 악몽이었다. 0대5로 대패했다.
평가전은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정이다. 체코전에서도 패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는 달라야 한다. "정신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이것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체코전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극복하고 경기를 할 것인지 중점적으로 준비하겠다." 슈틸리케 감독의 말 속에 해답이 있다. 정신력에서는 어느 팀에도 뒤져서는 안된다. 태극마크가 부여한 가장 큰 특명이다.
스페인전이 재연돼서는 안된다. 9월부터 시작되는 본고사인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도 적신호가 켜질 수 있다. 슈틸리케호의 위기관리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