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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더위가 고개를 들던 늦은 봄날. 한 여중학교가 들썩거렸다. 수원시 장안구의 수일여중.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의 유쾌한 '여학교 습격사건'이 벌어진 현장이다.
학교 체육관에 모여있던 3학년 여학생들은 수업 시작 전부터 왁자지껄했다. 여기저기서 '까르르…' 웃음소리가 줄을 이었고 "오늘 어떤 오빠들이 올까?", "넌 축구장 가본 적 있어?", "나는 축구공 차본 적도 없는데…". 축구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 여학생이라 그런지 축구는 모든 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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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 감독과 선수들의 등장. 건장한 오빠들이 바로 눈 앞에 늘어서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야, 저 오빠 TV 중계에서 봤어.", "키가 정말 크다. 근데 날씬하기까지 하네." 남학생 없는 여학교에 비주얼 그럴싸한 청년들이 몰려왔으니 눈요기 제대로 된 모양이다. 오히려 많은 여학생 앞에 선 선수들 얼굴이 빨개졌다. 구단 관계자가 "수원의 얼굴"이라며 이 감독을 소개하자 소녀들은 기다렸다는 듯 "우후∼" 환호성과 함께 물개박수를 쏟아냈다. 이어 '얼짱'대열에서 밀리지 않는 백지훈과 한국축구의 뉴스타 권창훈이 소개되자 환호성 데시벨은 점차 높아졌다. 권창훈은 "여학교를 따로 방문한 것은 처음인데 이렇게 뜨거울 줄 몰랐다. 남학교보다 반응이 센 것 같다"며 수줍게 웃었다. 술래잡기 게임으로 몸풀기를 시작한다. 유소년팀 지도에 해박한 이 감독은 공과 친숙하지 않은 여학생을 제대로 인도할 줄 알았다. 오빠들과 한데 섞여 술래잡기를 하다 보니 워밍업 제대로 됐다. 이제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모둠 활동으로 팀워크와 친밀감을 높일 때다. 헤쳐모여 게임이 이어졌다.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흔히 접하는 고전게임이지만 즐거움과 반응이 남달랐다. 그렇지 않아도 흥겹던 체육관이 '빵' 터졌다. 헤쳐모여 게임에서 술래가 된 권창훈이 벌칙으로 엉덩이로 이름을 썼다. 뻣뻣한 엉덩이 춤을 연상케 하는 '몸치' 권창훈의 '춤사위'에 비명같은 환호가 쏟아졌다. 권창훈이 제대로 망가져 준 덕분에 분위기는 최고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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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고급(?) 축구기술 배우기. 처음엔 공에 발끝을 갖다대는 것도 두려워하던 여학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이드킥 정확도가 높아지는 게 눈에 띈다. 선수들은 엄지손가락을 연신 들어보였고 학생들은 자신의 일취월장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런 와중에 이 감독이 헤딩 노하우를 전수한다. 이른바 '안녕하세요' 기술이다. 여학생들이 머리로 공을 맞히는 것조차 애를 먹자 "어렵지 않아요.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듯 상체를 살짝 숙이며 툭 갖다대요"라며 비법을 전했다. 기본기를 익혔으니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경기가 빠질 수 없는 법. 격한 축구경기 대신 원거리에서 콘과 콘 사이 골대을 맞히는 경기가 또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골을 성공할 때마다 터져나오는 탄성에 축구는 이미 친구가 된 듯했다. 김민지양은 "콘을 제대로 맞히지 못해 아쉬웠지만 이렇게 축구를 배우니 너무 재밌어요"라면서 "권창훈 오빠를 좋아하는데 앞으로 수원 삼성 경기를 보러가기로 결심했어요"라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언제 처음 봤냐는 듯 어느새 'One Team'이 된 스타와 명랑소녀들, 그냥 헤어지기 아쉬웠는지 'ABC 게임' 손등 때리기로 마무리 훈련을 대신하고 친필사인과 추억이란 선물보따리를 한아름 안았다. 여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함께 외친 한마디는 "축구 보러 갈게요"였다. 이윤영양은 "처음으로 축구를 배운 것이라 신기하고 재미도 만점이었어요. 집에 가면 아빠한테 자랑할래요"라며 총총 교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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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 학교체육 '이곳이 모범현장'
수원 구단 관계자는 수일여중이 좀 특이한 학교라고 했다. 재능기부를 위해 여학교를 선택한 것도 처음이지만 섭외 과정에서 적잖이 애를 먹었다. 대부분 여학교는 축구 재능기부에 시큰둥했는데 수일여중이 유독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적이 놀란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방문하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수일여중은 학교체육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수일여중 배구부는 최근 열린 제45회 전국소년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출전할 만큼 명문교다. 게다가 이 학교는 개교 당시 체육중학교였던 인연이 있다. 그래서인지 정식규격 축구장이 들어갈 만큼 운동장이 광활하다. 이런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정병국 교장 선생님의 남다른 교육철학이 든든한 뒷받침이었다. 2013년 혁신학교 공모교장으로 부임한 정 교장은 학교체육 예찬론자, 전도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구부가 있어 체육과 친근한 이 학교는 평소 체육시간을 거르는 일이 거의 없다. 여학생 특성에 맞춰 티볼, 킨볼, 바운드배구 등의 프로그램으로 체육시간을 꾸민다. 정 교장이 정한 수일여중의 교시는 '함께 성장하는 학교, 행복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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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장은 "혁신학교의 핵심이 배움 중심의 수업이다. 보여주기식 성과주의가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다"면서 "성과가 아닌 성장과 공감을 중심으로 하는 게 모토"라고 말했다. 이런 혁신교육을 실현하는 데 있어 체육활동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정 교장의 철학이다. 정 교장은 "체육을 통해 못하는 친구를 끌어주면서 배려심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서로 협력하며 훌륭한 인성을 갖추게 된다"면서 "심신단련, 성적을 위한 경쟁이 아닌 즐거운 학교체육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이 학교는 교내체육대회를 하더라도 단체경기가 주를 이룬다. 운동 잘 하는 선수 몇몇이 나오는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잘 하든, 못 하든 모두가 참여하는 학급대항 게임으로 구성할 때 나 혼자 잘해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교훈도 얻게 된다는 것. 이 학교는 시화전, 두드림 수요 콘서트 등 다른 교내활동도 학생과 교사들 자율에 맡기는 게 전통이다. 정 교장이 강조하는 인성지도 실천 2제도 인사와 언어문화다. 이 모든 게 배려심과 협동심이 뒷받침돼야 하는 데 체육활동을 통해 몸에 밸 수 있다는 게 정 교장의 소신이다. 정 교장은 "학교만 학생을 책임지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가 함께 도와야 한다. 그래서 이웃집 프로 구단이 온다기에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우리 학생들도 유명 선수에게 배웠으니 우쭐했을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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