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2016]호날두가 흘린 눈물, 동료들이 닦아주다

기사입력 2016-07-12 00:29


ⓒAFPBBNews = News1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1·레알 마드리드)는 '울보'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호날두의 어머니 돌로레스 아베이로는 "호날두의 어릴 적 별명이 울보였다"며 "호날두는 축구를 할 때 친구들이 자기한테 패스를 안하면 울음을 터뜨리곤 했다. 자신이나 다른 선수가 골을 못 넣어도 울었고, 패스를 잘 못해도 울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동료들이 플레이하지 못해도 울었다"고 증언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선 뒤에도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호사가들은 그의 정신력이 약하다고 지적하기도 하지만 호날두는 여전히 '꿋꿋하게' 눈물을 흘린다. 지금도 경기에서 질 때면,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면 어김 없이 울음을 터뜨린다. 분명한 사실 하나는 가슴 속에서 뜨겁게 달궈진 승부욕과 근성이 밀어낸 이 눈물 한방울이 호날두를 세계 최고 선수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점이다.

'울보' 호날두는 11일(한국시각) 무려 세차례나 눈물을 훔쳤다. 그는 프랑스 생드니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유로2016 결승전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차 있었다. 어쩌면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메이저대회 결승전. 승부욕 넘치는 호날두에게는 그보다 더 큰 동기부여는 없었다. '라이벌' 리오넬 메시에 앞서 메이저대회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니와 함께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선발 출전한 호날두. 하지만 건강한 몸상태의 호날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6분이었다. 전반 6분만에 찾아온 예상치 못한 불의의 부상. 드미트리 파예에게 무릎을 가격당한 호날두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치료 후 그라운드로 복귀했지만 이미 그는 정상이 아니었다. 결국 호날두는 16분 첫번째 눈물을 흘리며 주저 앉았다. 교체되는 듯 했던 호날두는 무릎에 붕대까지 감은채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하지만 역습 상황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어떻게든 파이널 무대를 완주하고 싶었던 호날두는 결국 전반 23분 스스로 교체를 요청했다. 그는 주장 완장을 집어 던지며 격하게 아쉬움을 표했다. 들것에 실려나가며 두번째 눈물을 흘렸다. 이때까지만해도 이 눈물은 통한의 서막이 될 줄 알았다. 경기 전까지 프랑스를 상대로 무려 10연패를 당하던 포르투갈이었다. 팀 공격 비중의 절반 이상이자 최후의 보루였던 호날두마저 빠진 상황. 경기장 안팎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인들이 당연한듯 포르투갈의 패배를 예상했다. 포르투갈 입장에서 믿을 것은 "포르투갈은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는 펠레의 예언 뿐이었다.

호날두가 빠진 포르투갈. 반전의 서막이었다. '스타'를 잃고 잠들 뻔했던 포르투갈은 '팀'으로 깨어났다. 못뛴다는 사실을 알고도 두번씩이나 그라운드로 돌아오려 발버둥 쳤던 호날두의 정신이 동료들의 혼을 깨웠다. 페페는 "호날두를 위해 뛰자"고 소리를 질렀다. 하나된 포르투갈은 바위처럼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반면, 호날두의 부상 전까지 포르투갈을 압도하던 프랑스는 무슨 영문인지 갑자기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이번 대회 실질적인 프랑스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파예는 죄책감에 시달린 듯 움직임이 무뎌졌고, 파예의 패스를 받지 못한 앙투안 그리즈만은 득점 선두의 위용을 과시하지 못했다.

동료들의 분전에 호날두도 뛰기 시작했다. 그라운드에서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벤치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냈다. 포르투갈 감독은 페르난두 산투스였지만 결승전의 감독은 호날두였다. 산투스 감독은 "캡틴 호날두는 벤치에서, 그라운드에서와 똑같이 뛰었다"며 찬사를 보냈다. 불편한 걸음으로 신호를 보내고, 지시를 내렸다. 호날두가 소리지르는 사이 동료들은 프랑스의 공격을 온 몸으로 막아냈다. 그렇게 포르투갈은 하나가 됐다.

하나로 뭉쳐진 그 순간,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연장 후반 4분 에데르가 프랑스 수비진의 압박을 이겨낸 후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프랑스의 골망을 흔들었다. 포르투갈의 유일한 정통 공격수였지만 대회 내내 중용받지 못했던 에데르였다. 포르투갈 선수들은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눴다. 호날두도 있었다. 본인의 득점이 아니면 잘 기뻐하지 않았던 호날두였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동료의 득점에 또 한번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번째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에데르는 "호날두는 나에게 골을 터뜨릴 수 있을 거라고 말했고, 정말 득점에 성공했다. 호날두가 긍정적인 힘을 줬다고 생각한다"고 호날두에 공을 돌렸다.

경기는 그대로 1대0, 포르투갈의 승리로 끝났다. 말그대로 기적같은 승리였다. 포르투갈은 사상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 트로피를 품었다. 3번이나 뜨거운 눈물을 흘린 호날두는 마지막 순간 활짝 웃었다. 동료들이 닦아준 눈물이 훈장처럼 반짝 빛났다. 호날두는 "오늘의 나는 불운했다. 하지만 항상 난 목표를 향해 함께해 왔던 동료들을 믿었다. 그들은 프랑스를 충분히 물리칠 만큼 강했다"며 "포르투갈 국민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은 나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라며 웃었다.

돌이켜보면 이번 대회에서 포르투갈의 모든 경기는 이날 결승전과 같았다. 쓰러질 듯 휘청거렸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이번 대회 공식기록은 '1승6무'. 단 한번도 압도하지는 못했지만, 단 한번도 지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객관적 열세를 '팀 스피릿'으로 맞서며 전진했던 포르투갈만의 우승 공식이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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