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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는 순서가 있다. 1 다음에는 2가 와야 한다. 1 다음에 3이 오면 '어라?' 한다.
발단은 이랬다. 19일 서울-광주전에서 김성호 주심은 이상호(서울)의 크로스가 박동진(광주)의 팔이 아닌 등에 맞았지만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명백한 오심이었다. 프로연맹은 사후 김성호 주심에 대해 무기한 배정 정지, 박인선 제2부심을 퇴출하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핸드볼을 선언해 페널티킥이라고 했다가 연맹 조사과정에서 말을 바꾼 박인선 부심에 대해 연맹 측은 "심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돼 퇴출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강도높은 징계에 심판들이 분노했다. 전국심판협의회(회장 박치환)는 24일 프로연맹과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K리그 클래식 서울-광주전(19일)에서 발생한 핸드볼 페널티킥 오심에 대한 징계 처분이 정당하지 않으므로 바로잡히는 날까지 프로, 아마 모든 리그 심판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
또 하나 건너 뛴 부분이 있다. 심판 활동 중단에 '아마' 경기가 포함된 사실이다. 문제는 프로 경기에서 벌어졌다. 징계 당사자도 프로축구연맹이다. 그런데 왜 학생 축구를 포함한 아마추어 경기를 볼모로 잡는걸까. 이 또한 순서를 뛰어넘은 상식 밖의 결정이다.
박치환 심판협의회장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우리가 보이콧을 하려는 건 아니고 결국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 좋다. 팬들이 온라인상에서 제기하고 있는 김성호 심판의 이력과 이를 집중 조명한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은 이례적 중징계라 생각할 수 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지난해 프로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승부조작' 파문을 모두 심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는 그들 사이의 미묘한 억울함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판단은 어디까지나 그들 만의 문제다. 억울하면 항소하고, 대놓고 밖에 하기 힘든 이야기라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축구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팬들의 눈에는 신성한 축구 경기를 볼모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보일 뿐이다.
28일 심판대표들은 프로축구연맹과 긴급 미팅을 갖고 이 사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징계를 늘리든 줄이든, 과거의 일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든 양 측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단,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심판협의회는 '모든 리그 심판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선언 만큼은 당장 철회해야 한다. 그게 순리고, 상식이다.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클수록 힘 세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 된다. 믿음을 상실한 공동체는 결국 파멸한다. 이번 사태도 결국 뿌리깊은 '불신'이 초래한 오버페이스가 아니었을까. '불신'은 곧 우리 모두의 '지옥'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