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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 담판 앞둔 심판협회, 축구계도 '상식'이 필요하다

정현석 기자

기사입력 2017-03-27 20:07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일에는 순서가 있다. 1 다음에는 2가 와야 한다. 1 다음에 3이 오면 '어라?' 한다.

순서에 맞춰 일을 처리하는 걸 순리라 한다. 순리는 자연의 질서가 있고, 인간의 질서가 있다. 자연의 질서는 매우 정교하다. 그래서 '자연스럽다'는 말을 쓴다. 인간의 질서는 조금 복잡하고 불완전하다. '인위적이다'라는 말을 쓴다. 그래서 관습이 있고, 법이 있어 행동을 규제한다. 하지만 그 보다 앞서는 판단 기준이 있다. 바로 '상식'이다. 정치권의 국정농단 사태에 다수의 국민이 분노하는 것도 바로 이 평범한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행동 양식인 상식. K리그에서 또 한번 흔들렸다. 전국심판협의회의 돌발행동에 축구판이 시끌시끌하다.

발단은 이랬다. 19일 서울-광주전에서 김성호 주심은 이상호(서울)의 크로스가 박동진(광주)의 팔이 아닌 등에 맞았지만 페널티킥을 선언했다. 비디오 판독 결과 명백한 오심이었다. 프로연맹은 사후 김성호 주심에 대해 무기한 배정 정지, 박인선 제2부심을 퇴출하는 중징계를 결정했다. 핸드볼을 선언해 페널티킥이라고 했다가 연맹 조사과정에서 말을 바꾼 박인선 부심에 대해 연맹 측은 "심판으로서의 자질이 의심돼 퇴출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예상을 뛰어넘은 강도높은 징계에 심판들이 분노했다. 전국심판협의회(회장 박치환)는 24일 프로연맹과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그들의 주장은 이렇다. 'K리그 클래식 서울-광주전(19일)에서 발생한 핸드볼 페널티킥 오심에 대한 징계 처분이 정당하지 않으므로 바로잡히는 날까지 프로, 아마 모든 리그 심판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

귀를 의심케 하는 선전포고였다. 순서를 뛰어넘은 상식 밖의 주장이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오심도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승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오심이었다면 책임이 따른다. 징계 처분은 불가피하다. 단, '징계가 과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다음 대목이다. '프로, 아마 모든 리그 심판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 대체 왜 그래야할까. 징계가 과하다면 항소할 수 있다. 징계 당사자인 프로축구연맹 측은 "매 경기 판정분석을 통해 오심 등에 대해 징계 처분을 한다. 만약에 당사자가 불복하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다시 한번 논의해 징계 수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과거 실제 그런 예도 있다"고 말한다. 심판협의회 측은 성명에서 '당사자 입회 진술 및 소명이 포함된 판정 분석 및 이에 따른 결론을 당사자들에게 서면으로 알려야 했음에도 조영증 심판위원장이 당사자들과 통화 후 일방적인 징계를 내렸다'며 '적법절차를 무시한 프로연맹의 일방적 태도에 분노를 느낀다'고 주장했다. '과하다'고 느낀 징계에 대한 심판 측의 우선 대응은 당연히 '항소'였어야 했다. 적어도 '심판활동 중단'이란 집단행동 선언은 그 이후 논의됐어야 할 문제였다. 1 다음에 바로 3으로 건너 뛴 상황. '왜 2로 가지 않았느냐'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 볼모로 잡힌 팬들의 분노는 이미 하늘을 찌르고 있다.

또 하나 건너 뛴 부분이 있다. 심판 활동 중단에 '아마' 경기가 포함된 사실이다. 문제는 프로 경기에서 벌어졌다. 징계 당사자도 프로축구연맹이다. 그런데 왜 학생 축구를 포함한 아마추어 경기를 볼모로 잡는걸까. 이 또한 순서를 뛰어넘은 상식 밖의 결정이다.

박치환 심판협의회장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사실 우리가 보이콧을 하려는 건 아니고 결국 잘못된 부분을 시정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 좋다. 팬들이 온라인상에서 제기하고 있는 김성호 심판의 이력과 이를 집중 조명한 언론보도에 영향을 받은 이례적 중징계라 생각할 수 있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지난해 프로축구계를 발칵 뒤집은 '승부조작' 파문을 모두 심판들에게 뒤집어 씌우려 한다는 그들 사이의 미묘한 억울함이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판단은 어디까지나 그들 만의 문제다. 억울하면 항소하고, 대놓고 밖에 하기 힘든 이야기라면 입을 다물어야 한다. 축구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팬들의 눈에는 신성한 축구 경기를 볼모로 '방귀 뀐 놈이 성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으로 보일 뿐이다.


28일 심판대표들은 프로축구연맹과 긴급 미팅을 갖고 이 사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징계를 늘리든 줄이든, 과거의 일을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든 양 측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단,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심판협의회는 '모든 리그 심판활동을 잠정 중단하겠다'는 선언 만큼은 당장 철회해야 한다. 그게 순리고, 상식이다.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클수록 힘 세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 된다. 믿음을 상실한 공동체는 결국 파멸한다. 이번 사태도 결국 뿌리깊은 '불신'이 초래한 오버페이스가 아니었을까. '불신'은 곧 우리 모두의 '지옥'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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