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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기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후반 인저리타임 불과 10초를 남겨놓고 페널티킥 휘슬이 울렸다. 수원의 2-1 리드 상황. 눈 앞의 시즌 첫 승을 앞두고 환호를 준비하던 수원 벤치와 응원석은 순식간에 침통해졌다. '또 무승부인가.'
모든 시선이 강원 키커 디에고와 수원 골키퍼 신화용에게 쏠렸다. 이어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됐다. 신화용은 디에고가 골문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아찬 공을 그림같이 막아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신화용은 그라운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눈물이었다.
이정수가 떠나자 정신적 지주를 잃은 수원 선수들은 동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베테랑들이 있었다. 이른바 '83그룹'이다. 1983년생 주장 염기훈을 비롯해 신화용 조원희 양상민이 '83그룹' 멤버다.
곽희주(36)의 은퇴에 이어 이정수마저 떠나면서 맏형 역할이 이들에게 주어졌다. 부상 재활 중인 양상민을 제외한 염기훈 신화용 조원희는 도원 결의를 하듯 "우리가 중심을 잡고 강원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자. 떠난 정수형을 위해서라도…", "고참들이 한 발이라도 더 뛰어서 후배들의 정신력을 자극하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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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염기훈이 선발 출전해 앞선에서 목이 터져라 2선 후배들을 독려하며 죽도록 뛰고, 2-1 리드를 지키기 위해 후반 교체 투입된 조원희가 온몸을 던져 방어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더욱 자극받았다.
마지막 순간 모든 짐이 신화용에게 떨어졌다. 페널티킥의 빌미가 된 조원희의 핸드볼 파울 판정이 억울했지만 동요할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디에고의 킥을 막자'는 일념 하나만으로 짧은 순간 고도의 심리전을 구상했다.
전반 15분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할 때 디에고에게 왼쪽 구석을 내줬던 신화용은 역발상을 떠올렸다. "보통 골키퍼들은 페널티킥에서 같은 키커를 상대하면 처음 허용했던 방향의 반대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감 충만한 디에고의 특성상 또 같은 쪽으로 찰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일부러 같은 쪽으로 차도록 반대쪽으로 뛸 것처럼 유도한 뒤 반 박자 빠르게 다이빙한 것이 적중했다."
이에 앞서 여러차례 선방쇼를 펼치며 강원의 반격에 찬물을 끼얹었던 신화용이다. 이날 수원의 첫승은 신화용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팬들의 반응도 180도 바뀌었다. 구단 페이스북에는 '수원이 베테랑 신화용을 데려온 이유를 알겠다', '수원의 신화(용)가 되어라' 등 신화용 예찬론이 쇄도했다.
베테랑은 떠났지만 남은 베테랑이 있었기에 큰 위기를 넘긴 수원. 나이 들었다고 민폐가 아니다. 경험은 거저 얻을 수 있는게 아니다. 신화용이 이런 교훈을 잘 보여줬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