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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살려낸 '베테랑의 힘'…신화용이 있었다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7-04-23 16:19 | 최종수정 2017-04-23 21:44


수원 골키퍼 신화용이 22일 열린 강원과의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막아낸 뒤 그라운드에 엎드려 감격의 눈물을 쏟아내자 동료 선수들이 격려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꼭 이기자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

22일 강원과 수원의 K리그 클래식 7라운드가 열린 강원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핑타워 축구장.

후반 인저리타임 불과 10초를 남겨놓고 페널티킥 휘슬이 울렸다. 수원의 2-1 리드 상황. 눈 앞의 시즌 첫 승을 앞두고 환호를 준비하던 수원 벤치와 응원석은 순식간에 침통해졌다. '또 무승부인가.'

모든 시선이 강원 키커 디에고와 수원 골키퍼 신화용에게 쏠렸다. 이어 극적인 드라마가 연출됐다. 신화용은 디에고가 골문 왼쪽 구석으로 낮게 깔아찬 공을 그림같이 막아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렸고 신화용은 그라운드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많은 의미가 담긴 눈물이었다.

성적 부진으로 수원 팬들로부터 온갖 비난에 시달려왔던 수원이 천신만고 첫승을 거둔 것은 베테랑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원은 베테랑 때문에 먼저 울었다. 팀내 맏형이던 이정수(37)가 결국 팀을 떠났다. 그동안 최고참이라는 이유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려왔던 이정수는 서포터스와의 충돌 사건을 겪자 은퇴 결심을 굳혔다. 이정수는 떠나기 전 구단측과 면담에서 "하필 작년부터 내가 수원에 복귀하고나서 팀 성적이 추락했다. 나 때문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고 후배들 앞길을 막는다는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이정수가 떠나자 정신적 지주를 잃은 수원 선수들은 동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남은 베테랑들이 있었다. 이른바 '83그룹'이다. 1983년생 주장 염기훈을 비롯해 신화용 조원희 양상민이 '83그룹' 멤버다.

곽희주(36)의 은퇴에 이어 이정수마저 떠나면서 맏형 역할이 이들에게 주어졌다. 부상 재활 중인 양상민을 제외한 염기훈 신화용 조원희는 도원 결의를 하듯 "우리가 중심을 잡고 강원과의 경기에서 반드시 이기자. 떠난 정수형을 위해서라도…", "고참들이 한 발이라도 더 뛰어서 후배들의 정신력을 자극하자"고 다짐했다.


수원 골키퍼 신화용이 22일 강원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디에고의 페널티킥을 슈퍼세이브로 방어하고 있다.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이들 가운데 이정수의 은퇴사건에 더 큰 충격을 받았던 선수가 바로 신화용이다.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신화용도 올시즌 새로 합류한 베테랑이다. 작년 이정수의 입단 초기와 마찬가지로 신화용이 입단한 이후 6경기 연속 승리하지 못했다. "내가 합류하고나서 팀 성적이 부진해져 더 미안했다"는 이정수의 마지막 말이 더 사무치게 다가왔다.

동갑내기 염기훈이 선발 출전해 앞선에서 목이 터져라 2선 후배들을 독려하며 죽도록 뛰고, 2-1 리드를 지키기 위해 후반 교체 투입된 조원희가 온몸을 던져 방어하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더욱 자극받았다.

마지막 순간 모든 짐이 신화용에게 떨어졌다. 페널티킥의 빌미가 된 조원희의 핸드볼 파울 판정이 억울했지만 동요할 틈이 없었다. '어떻게든 디에고의 킥을 막자'는 일념 하나만으로 짧은 순간 고도의 심리전을 구상했다.

전반 15분 페널티킥 선제골을 허용할 때 디에고에게 왼쪽 구석을 내줬던 신화용은 역발상을 떠올렸다. "보통 골키퍼들은 페널티킥에서 같은 키커를 상대하면 처음 허용했던 방향의 반대쪽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신감 충만한 디에고의 특성상 또 같은 쪽으로 찰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에 일부러 같은 쪽으로 차도록 반대쪽으로 뛸 것처럼 유도한 뒤 반 박자 빠르게 다이빙한 것이 적중했다."

이에 앞서 여러차례 선방쇼를 펼치며 강원의 반격에 찬물을 끼얹었던 신화용이다. 이날 수원의 첫승은 신화용이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팬들의 반응도 180도 바뀌었다. 구단 페이스북에는 '수원이 베테랑 신화용을 데려온 이유를 알겠다', '수원의 신화(용)가 되어라' 등 신화용 예찬론이 쇄도했다.

베테랑은 떠났지만 남은 베테랑이 있었기에 큰 위기를 넘긴 수원. 나이 들었다고 민폐가 아니다. 경험은 거저 얻을 수 있는게 아니다. 신화용이 이런 교훈을 잘 보여줬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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