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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휴식 대신 나눔 택한 이근호, 모두가 웃은 '기부왕의 잔치'

기사입력 2017-08-27 17:11



한국 축구가 숨죽이고 있다.

러시아행의 운명이 가까워지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이 이란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9차전(31일) 담금질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란전에서 비기거나 패하면 러시아행 뿐만 아니라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의 역사가 흔들린다.

신 감독은 27일 '휴식'을 부여했다. A대표팀은 전날 K리그 클래식 수원 삼성과의 연습경기 패했다. 어디까지나 준비과정일 뿐이다. 파주NFC(국가대표트레이닝)에서 1주일 동안 굵은 땀방울을 흘린 선수들이 바깥바람을 쐬며 재충전하도록 유도했다. 신태용호의 일원인 이근호(강원FC)도 자유시간을 부여 받았다.

이근호가 택한 재충전 방식은 나눔이었다. 이날 강원도 강릉 강남축구공원에서는 '제2회 이근호 자선축구대회'가 열렸다. 지난해 경기도 남양주에서 첫 발을 내디딘 이 대회는 올해 이근호가 뛰는 강원FC의 연고지역 중 하나인 강릉에서 펼쳐졌다. 강릉, 속초, 동해, 원주, 춘천 등 강원도 뿐만 아니라 서울, 성남, 용인, 평택, 경기 광주 등 수도권 팀들까지 35개 유소년 클럽이 참가했다. 이근호는 자선경기 참여를 위해 파주에서 강릉까지 '당일치기' 일정을 소화하기로 했다.


이근호의 별명은 '기부왕'이다. 지난 수 년간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기부로 나눔을 실천해왔다. 하지만 상당한 비용이 드는 자선축구대회 개최는 쉽지 않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주변의 관심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축구로 받은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하겠다'는 이근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사비를 털어 대회를 준비하는 이근호의 취지에 동참한 기업들의 후원이 더해지면서 풍성한 나눔 잔칫상이 완성됐다. 이근호의 에이전트인 김동호 DH스포츠 대표는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으나 선수 본인의 열정과 여러 후원 덕분에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그라운드엔 웃음꽃이 피었다. 푸른 운동장을 종횡무진하며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이는 자녀들의 모습에 부모들은 환호성을 멈추지 않았다. 뜨거운 땀을 흘린 뒤엔 경기장 한켠에 마련된 워터슬라이드 물놀이장에서 더위를 식혔다. 구자철 지동원 김민우 이영표 등 국가대표 동료, 선후배들이 보낸 애장품의 자선경매는 여름 더위가 무색한 열기가 펼쳐지기도 했다. 성남FC 유소년 아카데미에서 활약하는 초등생 자녀의 활약을 지켜보기 위해 강릉을 찾은 이귀용씨(42)는 "나눔이라는 이번 대회의 취지가 좋아 다른 대회 대신 참가하자고 부모들과 뜻을 모았다"며 "대표팀 현역선수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좋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아이들이 크게 느끼는게 있을 것 같다. 아이가 축구를 통해 자신감과 협동심을 배우고 다른 지역의 친구들과 폭넓게 교류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웃었다. 동해 해오름FC에서 뛰는 4학년 자녀를 둔 김영신씨(50)도 "이근호 선수의 열정으로 우리 지역에서 이런 대회가 개최되어 너무 뿌듯하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가운 손님도 찾아왔다. 경기 중 급성 심정지로 잃었던 의식을 사투 끝에 기적적으로 되찾은 '희망의 아이콘' 신영록이 이날 대회를 찾았다. 꾸준한 재활 속에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 중인 신영록은 이근호와 손을 맞잡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근호의 소속팀 동료인 김오규 이범영 한국영도 이날 사인회를 열며 나눔행렬에 동참했다.

이근호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 외출을 이용해) 너무 멀리 다녀오는 것 아니냐는 주변의 우려가 있었는데 오길 잘한 것 같다. 마음이 편해야 몸도 편안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웃었다. 그는 "지난해와 올해 대회 준비를 하면서 어려움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축구 선, 후배, 동료들의 도움 덕에 무사히 대회를 마칠 수 있었다"며 "내 작은 행동이 계기가 되어 나눔의 문화가 확산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근호는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수익을 강릉시 사회복지팀과 자신이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푸르메재단에 기부했다. 2015년부터 후원해 온 신영록의 재활치료 비용도 보태며 부활을 응원했다. 애장품 경매를 통해 얻은 수익은 올 겨울 연탄, 쌀 등을 구매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에게 직접 전달할 예정이다.


강릉=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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