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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경의 J사커]'탈아' 외치는 日축구, 정작 '아시아'라는 기본이 없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8-01-23 07:39


ⓒAFPBBNews = News1

일본 축구의 올 겨울이 유난히 춥다.

야심차게 출항한 '모리야스 재팬'이 고개를 숙였다. 우승을 목표로 출항했던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아시아챔피언십 8강전에서 우즈베키스탄에게 0대4로 대패했다. 전반에만 3골을 내준 내용이나 4실점의 결과 모두 지난달 동아시안컵 한국전을 떠올리게 한다.


ⓒAFPBBNews = News1
정작 일본 현지 분위기는 담담하다. 산케이스포츠 정도가 '도쿄 올림픽 세대의 굴욕적인 패배'라고 전했을 뿐 대다수 언론은 경기 결과를 담담하게 전했다. 동아시안컵 당시 신태용호에게 1대4 참패를 당한 뒤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에 대한 거센 비판이 흘러나왔지만 곧 수그러들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물론 할말은 있다. 이번 대회는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까지 지휘봉을 잡는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처음으로 치르는 국제대회였다. 모리야스 감독은 '도쿄올림픽 대비 육성'을 명분으로 21세 이하 선수들로만 스쿼드를 꾸렸다. 일본 축구계도 이 점을 감안하는 모양새다. 하지만 우즈벡전 패배 외에 이번 대회를 통해 드러난 아시아 경쟁국들의 발전상이나 흐름에 대한 고민은 엿보이지 않는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굳이 신경쓸 필요 없다'는 의도적 무시의 느낌마저 들 정도다.

지난 20년간 일본 축구의 지향점은 '탈아시아'였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을 통해 본선행의 꿈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아시아'는 넘어야 할 벽이었다. 이후 일본 축구가 빠르게 발전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축구선진국인 유럽-남미와 발 맞춰 가야 한다는 기류가 흘렀다. 유럽-남미와 시즌 운영 사이클을 맞추기 위한 J리그의 추춘제 도입이나 국내 선수풀을 사실상 개방한 독일 분데스리가와의 협약은 이런 기조와 무관치 않다. 선진국의 장점을 흡수해 강점으로 만든다는 명확한 목표였다. 반면 '뿌리'이자 '바탕'인 아시아 내에서의 행보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번 대회 충격파가 일본 내에서 크지 않은 이유다.


이런 일본의 기조는 한국 축구의 어제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 축구도 한때 '탈아시아'를 외쳤던 적이 있다.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32년 만에 월드컵의 문을 연 뒤 '아시아는 좁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럽-남미팀과의 승부가 중요했을 뿐 아시아권 팀과의 맞대결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아시아 최강', '월드컵 최다 진출, 최고 성적팀'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국 축구는 강팀에 때론 강한 면모를 보였으나 약체를 상대하는 법을 빠르게 잊어가기 시작했다. 강팀을 상대하는 법에 골몰한 나머지 약팀의 밀집수비를 뚫는 법에 미숙해졌다. 행정도 마찬가지다. 한때 '아시아 맹주'를 자처했던 한국 축구 외교는 중동세의 거센 도전과 중국, 일본의 약진 속에 희미해졌다. 월드컵과 올림픽이라는 성과는 이어졌지만 안방에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뒤늦게 이를 깨달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월드컵, 올림픽 예선에서의 고전과 무너진 축구 외교 복원 등 힘겨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부실한 기초 속에 올라선 본선에서의 패퇴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일본 J리그의 시스템과 행정, 자금력은 아시아 최고라 부를 만하다.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을 앞세운 축구 외교력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일본 클럽이나 대표팀의 오늘에 '최고'라는 수식어가 뒤따르진 않는다. 최근 수 년 간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성적, 월드컵-올림픽 본선에서의 결과물이 그렇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 무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선 먼저 아시아 최고가 돼야 한다. 지금의 일본 축구 뿐 아니라 한국 축구도 잊지 말아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스포츠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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