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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Q&A]스마트시대에 배번바꾼 유니폼 왜 입을까?

최만식 기자

기사입력 2018-06-14 05:52


2018 러시아월드컵 축구대표팀이 7일 오후(한국시각)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볼리 스타디움에서 볼리비아와 평가전을 했다. 경기는 0-0 무승부로 끝났다. 선수들이 종료 후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인스부르크(오스트리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6.07/



"다 알고 있다."

스웨덴 전력분석가이자 스웨덴대표팀 감독을 역임한 라세 제이콥손이 한국의 전력 탐색에 대해 한 말의 요지다.

한국-세네갈전(11일·이하 한국시각)이 끝난 뒤 그는 "나는 (한국의) 선발출전 선수를 파악했다. 한국-세네갈전이 비공개라고 하지만 나는 다른 통로를 통해 선발출전 선수들과 전술 그리고 포메이션까지 모든 정보를 얻었다"고 말했다.<스포츠조선 6월 12일 보도>

신태용 A대표팀 감독은 전력 노출을 막기 위해 세네갈전에 국내 취재진 접근도 불허하며 철통 보안을 하려했지만 이른바 털린 셈이다. 클릭 몇번이면 각종 정보가 쏟아지는 스마트폰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스마트 시대를 대변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데 한국은 최근 1980∼1990년대부터 해오던 '위장 전술'을 그대로 사용했다. 일명 '유니폼 등번호 바꿔 입기'다. 지난달 28일 온두라스와의 평가전부터 마지막 공개 평가전이던 7일 볼리비아와의 평가전까지 태극전사들은 남의 등번호 유니폼을 입었다. 최종 리허설이었던 세네갈전은 비공개를 했기 때문인지 한국 선수들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등록된 등번호대로 유니폼을 챙겨 입었다.

반면 같은 조에 속한 독일과 멕시코는 어떨까. 독일은 비슷한 시기에 치른 두 차례 평가전에서 선수들의 고유 등번호를 바꾼 적이 없다. 멕시코도 10일 덴마크와의 평가전에서 유니폼 바꿔입기를 하지 않았다.

세네갈전처럼 철통 보안을 하려고 해도 뚫리는 마당에 등번호 정도 바꿔 입는다고 해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볼리비아전을 생중계한 MBC의 경우 경기에 앞서 양팀 선수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바뀐 등번호, 선수의 얼굴 사진과 함께 포메이션까지 친절하게 알려줬다. 인터넷 방송 또는 유투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 중계를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등번호를 바꿔 상대를 교란시키고 싶어도 몇초 만에 선수의 얼굴을 확인하면 금세 알 수 있다.

축구계에 따르면 등번호 바꿔입기는 과거 통신·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적'들에게 전력 노출을 막기 위한 요긴한 방법이었다. 특히 유럽 등 외국인들 시선에서는 동양인 등 유색인종의 얼굴을 식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있었단다.


그러나 인터넷, 모바일 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요즘 구시대적 유물이 됐다. K리그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습경기를 할 때 등번호 바꿔입기를 하는 팀은 없다고 한다. 과거 비디오분석관이 관중석 먼발치에서 상대팀 경기를 풀샷으로 촬영할 때 등번호를 보고 선수를 구분했지만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얼굴 확인이 금세 가능하기 때문에 등번호 바꿔입기의 필요성이 사라졌다는 것.

프로팀보다 훨씬 더 좋은 장비, 인력이 동원되는 월드컵대표팀이라면 더욱 필요없을 듯 하다. 축구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그렇게 해왔으니 아마 습관적으로 하는 것 같다. 등번호 바꿔입기는 의미가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큰 효과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상대적인 약체 입장에서는 '혹시나…'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다. 이왕이면 있는 그대로 내놓고 평가전을 하기보다 조금이라도 감출 수 있으면 감추고 싶어한다"면서 "선수들의 이름과 배번이 마킹된 정식 유니폼이 미처 제작되지 않아서 그냥 섞어서 입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 경쟁국 입장에서 한국에는 손흥민 기성용 김신욱 등 잘 알려진 선수 외에 생소한 얼굴도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르니' 감추는 데까지 감춰보자는 심리인 듯하다. 등번호 바꿔입기는 러시아월드컵에서 약체로 꼽히는 한국축구의 고뇌 중 한 단면이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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