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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다이내믹한 1년을 보낸 수원 삼성 이임생 감독이 진심을 털어놨다. 이임생식 축구를 비꼬는 '노빠꾸' 축구부터 사퇴 암시 발언까지, 지난날 돌아본 이 감독은 "외롭고 힘들었다. 하지만 팬들에게 FA컵을 안겨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FA컵 우승 목표를 이룬 이 감독을 선수단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18일 오후 수원 화성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피지컬, 퍼포먼스 등 모든 면에서 우리가 완패했다. 충격이었다. 리그에서 부진한 상황에서 팬들에게 FA컵 트로피를 안겨야겠다는 욕망이 컸었다.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선 무슨 1년차 감독이 책임을 지느냐고 했지만, FA컵에서 우승하지 못했다면 상주 상무전을 마치고 구단에 내 생각을 전달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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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빠꾸'라는 표현에 대해 이 감독은 "모든 부분에 동의하진 않지만, 다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감독과 선수는 제삼자(팬)로부터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쿨하게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마음은 달랐던 모양이다. 이 감독은 수원 사령탑 부임 전 8년 동안 싱가포르와 중국 등 해외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다. 이 감독 기사에 줄지어 달리는 비난 댓글을 가족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웠으리라.
"나보다는 아내와 아이들이 힘들어했다. 선수와 코치, 감독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두 아들에게 아빠, 남편 노릇을 제대로 한 게 없다. 첫째가 지금 스물다섯, 둘째가 스물둘이다. 다 커버렸다. 그런 애들에게 아빠가 K리그에 와서 욕만 먹는 모습을 보여줘 미안했다. 아내는 내가 집에서 위축돼 있으면 다양한 조언을 해줬다. 경기에서 져도 하루만 슬퍼하고, 이겨도 하루만 기뻐하라고. 가족의 힘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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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할 수 있다: "데얀을 나쁘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 감독이 승점 압박에 시달릴 때 데얀 문제가 터졌다. 데얀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전시간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토로한 것이다. 여론은 'K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의 편인 듯했다.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데얀을 왜 활용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고, 이 감독은 거의 매 경기 데얀에 관한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이 감독은 "데얀은 K리그의 레전드이고, 내가 좋아하던 선수였다. 전지훈련 때까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시즌을 치르면서 나에게 섭섭한 게 생겼던 것 같다. 데얀이 부탁하고 요구한 부분이 있는데, 다른 선수들을 이해시키지 못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경기장에서 일단 경기력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그전까진 일대일로 대화를 하다 오해가 생길 수 있겠다 싶어 통역을 대동했다. 그 친구에게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 요구하고 그런 부분에 대해선 언론에 말하지 않았다. 내가 안고 가야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감독과 선수의 수평선을 어떻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소통을 중시한다. 선수시절부터 마음을 열고 선수들에게 다가가는 감독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컸다고 한다. 그는 올 시즌에도 베테랑부터 고등학생 신분 신예까지 모든 선수들과 '공감'하려고 애썼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여야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구대영 고승범은 개인적 노력과 소통을 통해 힘든 시간을 이겨낸 대표적인 케이스다. FA컵에서 인생경기를 치른 고승범은 "정말 힘들 때 감독님이 다양한 말을 많이 해주셨다. 나를 신경 쓰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누구 한 명 소외되지 않게끔 개인 미팅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미팅을 많이 하는 것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나는 선배 된 마음으로 장단점을 말해주고, 충고를 곁들였다. 고승범에게 '자만할 때 정체된다'고 이야기해주는 식이다. 헌데 이런 말들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기고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이것은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내가 선수를 부르기보단 선수들이 언제든지 다가와 속마음을 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올 시즌 여러 모로 느낀 게 참 많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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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FA컵 우승으로 내년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땄다. 스쿼드 보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큰 폭의 선수 영입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모기업 삼성이 스포츠단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는 추세다. 이 감독도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는 "구단에 가서 재정 상황을 전해 들었다"며 "올 시즌과 비슷한 스쿼드로는 좋은 퍼포먼스를 내기 어렵겠지만, 어린 애도 아니고 비싼 선수 사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다. 현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어린 선수와 저비용으로 영입한 용병을 경쟁력 있는 선수로 키우는 것 두 가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해야 하고, 극복해야 할 일이지만, 솔직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팀을 보면 두렵고, 무섭다. 걱정이 많이 된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최근 심경을 털어놨다. 한편으론 2020년이 기대된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소화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시즌을 치르면서 어떻게 운영하면 될지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 내년에는 더 조직적인 팀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속에서 꿈틀댄다"라고 새로운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 감독은 일단 K리그 남은 2경기를 무사히 마친 뒤 이뤄질 영입 성과를 지켜보며 다음시즌 도전 목표를 설정할 거라고 밝혔다.
화성=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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