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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부임 첫해 FA컵 우승과 오늘 마지막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같다."
'아시아의 호랑이'가 8년만에 돌아왔다. K리그의 자존심을 오롯히 지켜내며 2012년 우승 이후 다시 아시아 정상에 우뚝 섰다. 리그 준우승, FA컵 준우승에 울었던 김 감독의 울산이 삼세번만에 기어이 웃었다. 마지막 승부, '유종의 미' 사나이 약속을 지켰다. 조별리그부터 우승까지 10경기에서 9승1무, 카타르 입성후 9연승, 9경기 연속 2골 이상의 압도적 공격력으로 퍼펙트한 우승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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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준우승 후 리더로서 감내해야 했던 마음고생도 솔직히 털어놨다. "카타르에 안갈까도 생각했다. 분위기가 바뀌면 팀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아내도 가라고 했고, 김광국 단장님도 끝까지 가자고 하셨다. 책임감 덕분에 잘 마무리된 것같다. 우승 못하면 다시 욕 먹을 각오로 왔다. 우승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 덕분에 욕 안먹고 마무리하게 됐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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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직후 김 감독이 주니오와 함께 눈물을 쏟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김 감독은 "나는 안 울었다. 눈시울만 조금 뜨거워진 것"이라더니 "사진에 내가 주니오보다 너무 작게 나왔더라"라는 농담으로 애써 마음을 숨겼다. 주니오는 ACL 무대에서도 7골, 최다골 활약을 펼치며 'K리그1 득점왕'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결승전에서도 극도의 부담감을 이겨내며 페널티킥 찬스에서 멀티골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사실 주니오가 너무 울어서 찡했다. 나도 선수들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주니오도 힘든 상황에서 계속 스스로 더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승 후 다들 너무 기뻤지만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서 찡했던 것같다. 저를 위해 열심히 뛰어줘서 너무 고마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도훈 감독은 2017년 울산 지휘봉을 잡은 후 지난 4년간 2017년 FA컵 우승, 2018년 FA컵 준우승, 2019년 리그 준우승, 2020년 리그 준우승, FA컵 준우승, 그리고 ACL 우승 역사를 썼다. 리그 우승을 두 차례 놓쳤지만 FA컵에서 3번의 결승행을 이뤘고, ACL에서 8년만에 우승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단언컨대 역대 울산 감독 중 최고의 성적이다. 그럼에도 지난해와 올해, 전북에 리그 역전우승을 내주며 김 감독은 '대역죄인'이 됐다. 10월 25일 파이널라운드 전북과의 마지막 맞대결에서 0대1로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울산을 이끌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돌직구 질문에 김 감독은 "우리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 과정을 즐겼고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제 능력은 제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고 답했었다.
마지막 고별전을 ACL 우승으로 마무리한 후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다시 축구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축구가 즐거워야 되는데 준우승을 두 번 하다보니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카타르에선 우리 선수들과 즐겁게 축구했다. 축구가 즐겁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즐거움은 축구가 팬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예술"이라는 가슴 찡한 한마디를 남겼다.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고 더 발전하길 기대하고 응원하겠다. 마지막으로 집에 가서 와인 한 잔 하며 쉬고 싶다. 감사하다." 아시아 정상에 오른 후 미련없이 돌아서는 김도훈 감독의 작별인사에는 축구인다운 품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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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에 비해 박한 세상의 평가가 섭섭하진 않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완벽을 향한 '과정'을 이야기했다. "결과가 안좋았던 경기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코칭스태프들이 회의하고 노력하고 매순간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안좋은 건 어쩔 수 없었다. 코칭스태프들에게 가장 고맙다. 또 이런 좋은 팀에서 지도자로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펼칠 수 있게 믿고 지원해준 구단에 감사한다"고 했다. "미디어와 팬들도 좋은 이야기, 안좋은 이야기 다 할 수 있다. 안좋을 때 주셨던 그 질타들이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겸허하게 돌아봤다. 매순간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던 김도훈 감독이 그토록 간절했던 우승과 함께 4년 정든 울산과 결별했다.
ACL 조별리그부터 우승까지 한 달간의 뜨거웠던 여정,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다. "모든 경기가 다 좋았고, 아름다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 2017년부터 지난 4시즌간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물었다. "첫해 FA컵 우승, 마지막 ACL 우승." 우승으로 시작해 우승으로 마무리, 'K리그 레전드' 김도훈다운 '유종의 미'였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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