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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오, 8년만에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이끈 울산 현대 선수들의 2주 자가격리가 마침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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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4년간 함께한 김도훈 감독님은 선수들이 원하는 걸 최대한 들어주시면서 본인의 철학을 갖고 가는 분이셨다. 어떻게 하면 선수들이 더 편하게, 즐겁게 해줄까 제일 많이 고민하시는 분이셨다. 선수들이 더 알면 좋은데, 그 정도로 배려하신 분은 많지 않을 것같다. 제게도 늘 "네가 알아서 해라"며 한결같이 믿어주셔서 감사했다. 11월 FA컵 준우승 후 방에 계신 감독님의 힘든 표정을 봤다. 카타르에 가기 전 감독님이 공항에 안오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다.(웃음) 카타르에서 감독님은 "내 마지막이니 훈련도 경기도 재미있게 하고 가자"고 하셨다. 김 감독님 특유의 웃음이 있다. 정말 기분 좋아지는 웃음이다. 올해 훈련장, 경기장에선 그런 웃음을 잘 못봤는데, 카타르에선 그러셨던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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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별리그 경기를 앞두고 대표팀 선수 3명(김태환, 정승현, 원두재)이 온다고 해서 시끄러웠다. 코로나 때문에 오는 선수도 불안하고, 카타르에 있는 선수도 불안했다. 카타르 규정상 음성판정을 받으면 곧바로 합류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자체 규정으로 선수단 합의하에 열흘의 자가격리 기간을 뒀다. 운동장을 사이에 두고 떨어진 채 훈련하고 김도훈 감독님이 양쪽을 두루 살피셨다. 오스트리아에 이어 3주 넘게 격리된 선수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이 중요했다. 구단 직원으로서 이들의 불편, 불만을 다독이는 것이 팀을 위해 내가 할 일이었다. 커피, 라면, 간식 등 원하는 걸 세심하게 챙겨주고 불편함을 줄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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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 파이널라운드 때 긴장감 때문인지 필드 안이 늘 너무 조용했었다. ACL은 완전히 달랐다. 박주호, 이근호, 조수혁 등 고참 선수들이 정말 말을 많이했다. "괜찮아!" "우리 것 하면 돼!" "얘네 별 거 없어!" 시끌벅적했다. 특히 박주호 선수의 역할이 컸다. 매경기 목이 다 쉬어서 나왔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박주호가 빠지면 이 역할을 누가 대신 하지?' 걱정됐을 정도다. 큰 무대를 아는 베테랑이 보여준 혼신의 파이팅이 우승에 큰 동력이 됐다.
▶카타르 불고기의 힘
카타르 호텔에서 몇 안되는 즐거움은 '한식'이었다. 호텔 근처 한국식당을 출국 전 미리 알아놨다. (김광국) 대표님도 사기 진작을 위해 특식비를 아낌없이 지원하셨다. 김치찌개, 불고기를 자주 시켰는데, 불고기는 주니오 등 외국인 선수들도 정말 좋아했다. 한번은 이청용 선수가 불고기 특식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식사 후 곧바로 "맛있게 잘 먹었다"는 카톡을 받은 기억이 난다. 이청용은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선수다. "형이 잘해줘서 선수들이 편하게 생활하고 있어요"라는 인사도 큰 힘이 됐다. 보람을 느꼈다. 가끔 지쳐서 '내가 누구를 위해 이렇게 일하는 걸까' 생각이 들 때 그런 말 한마디를 들으면 '내가 더 잘해야겠다' 다짐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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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무대에서 이근호, 박주호, 이청용, 윤빛가람같은 경험 많은 고참들의 역할은 ACL이 처음인 후배들에게 큰 힘이 됐다. 특히 근호형은 말 한마디만으로도 큰 영감을 주는 선수였다. 마치 미래를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같았다. '베이징 궈안만 넘으면 결승 간다'며 모두가 낙관했던 빗셀고베와의 4강전, "우리가 쉽게 생각하지, 고베는 절대 쉽지 않아"라고 강한 경계심을 표했었다. 연장전 내내 근호형의 말이 생각났다.
우승 후 근호형과 특별한 추억도 남겼다. 2012년 첫 ACL 우승 때 근호형이 MVP였고, 나는 갓 입사한 인턴이었다. 라커룸에서 눈치를 보며 함께 사진을 찍었었다. 카타르에서 형에게 8년전 그 사진을 보여줬다. 페르세폴리스와의 결승전, 근호형이 우승하면 그날처럼 다시 사진 찍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승 후 라커룸에서 8년만에 인증샷을 찍는데 뭉클했다. 믿기지 않았다.
▶팀매니저의 촉? 12월 22일 귀국 티켓 예약
인천공항에서 출발할 때 누구도 우승을 상상하지 못했지만 귀국 비행기는 우승까지 고려해 12월 22일로 끊었다. 지면 짐을 싸야하는 '넉아웃' 토너먼트, 아찔했던 순간도 있었다. 4강 빗셀 고베전 두 번째 골을 내준 직후 여행사에 귀국 일정 변경을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핸드볼로 골이 취소된 후 휴대폰을 쏙 집어넣었다. 우승 시상식이 코로나로 인해 간소하게 진행되면서 하루 당긴 21일 귀국편을 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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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무원' 주니오는 볼수록 대단한 선수다. 빗셀 고베전 연장 역전승 직후 외국인선수들끼리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PK 안떨렸어?"라고 물으니 주니오가 대답하더라. "골키퍼와 부딪쳐 넘어지는 순간, PK 준비를 했지. 왼쪽으로 차야겠다, 그때 이미 결심했어."
도하공항 귀국길, 주니오가 트로피를 직접 운송했다. "어떻게 이 트로피를 부치냐"며 '핸드캐리'를 자청했다. 비즈니스석에서 7시간 넘는 비행시간 내내 자식 다루듯 애지중지 우승 트로피를 꼭 껴안고 왔다. 그 모습이 너무 짠했다. 그동안 울산을 위해 노력한 모든 순간을 이 트로피로 기억하려는 듯 보였다. 우승 직후 그라운드에 엎드려 흘린 뜨거운 눈물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니오에게도 너무나 간절했던 우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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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격리 시작 이틀째, 울산 선수, 직원들의 집집마다 골키퍼 조현우의 과일바구니가 도착했다. 클럽하우스는 택배로, 시내쪽은 선수, 직원들 주소를 일일이 물어보면서 직접 배달했다. 우리집에도 왔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눈인사만 나눴다. 국대 골키퍼가 과일바구니를 보내주다니, 진짜 영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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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신기했던 것은 이 우승의 과정이다. 팀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마무리를 목표로 하나가 됐다. 계약이 끝나는 선수도 있고, 이미 이적이 정해진 선수도 있고…, 어느 순간 호텔 복도에서 (에이전트와) 통화하는 선수들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 이 멤버였다. 이근호도, 박주호도, 이청용도 "우리가 내년에 함께 가든 안가든 일단 여기서 우리끼리 재미있게 하자"고 했다. "우승 못해도 최선을 다하면 된다. 떠나게 되더라도 이 멤버로는 다시 오지 못할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축구 자체를 즐겼던 것같다. 부담없이 즐기며 모두가 함께 뛰면서 사흘에 한번씩 승리가 이어졌고, 분위기가 저절로 좋아졌다. 실수해도 "괜찮아!" 서로를 격려하는 분위기였다. 말이 아닌 진심이었다. VAR의 행운도 따랐다지만, 우리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해피엔딩은 비우고 즐긴 것, 포기하지 않은 노력과 실력의 결과다.
개인적으론 2012년 ACL 때 인턴으로 우승하고 2020년 ACL에서 팀 매니저로 우승했다. 울산 현대의 팀 매니저로서 책임감과 자부심을 느꼈고,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한편으로 꿈같았다. '우리가 정말 해냈구나.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기쁘고 신기하고 짠한 아주 복합적인 감정이었던 것같다. 감독님도, 선수들도, 저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어 감사하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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