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우리 모두 행복했습니다" 황인범과 서울, 뜨거웠던 3개월간의 기록

최종수정 2022-07-26 16:11


[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FC서울과 황인범(26)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돌아보면, 한편의 러브스토리 같다. 그리스 올림피아코스 이적을 앞두고 26일 출국한 황인범은 서울을 향해 "특별한 선수로 기억해달라"고 말했고, 서울은 그런 황인범을 향해 "고맙고, 행복했다"고 화답했다.

황인범은 "서울은 나 자신도 몰랐던 내 가치를 일깨워준 구단이다. 이해가 안될 정도로 잘 대해줬고, 끝까지 붙잡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너무 감사하다. 팬들도 과분한 사랑을 줬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울진 않았지만, 많이 아쉬웠고, 죄송했던 게 사실이었다. 더 좋은 컨디션으로 팀에 더 많은 기여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부디 남은 시즌 좋은 성적을 거두고, (특히)FA컵에서 우승해 회식에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은주 서울 대표는 직접 쓴 편지를 황인범에게 전달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K리그 모든 구단의 달콤한 유혹을 물리치고 흔쾌히 FC서울과 함께 해줘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덕분에 서울 선수는 물론 팬들에게 큰 힘이 되었으며, 우리 모두 행복했다. 앞으로 첫 발을 딛는 새로운 팀에서도 한국축구의 자존심을 맘껏 보여주고 한단계 더 성숙한 모습으로 카타르월드컵에서 뛸 수 있기를 열렬히 응원하겠다. 훗날 다시 서울 유니폼을 입고 우리 팬들에게 나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양측이 첫 인연을 맺은 건, 러시아 루빈 카잔 소속이던 황인범이 발가락 부상 치료차 일시귀국한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인범이 자택에 머무르면서 치료에 집중하는 사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 침공하는 사태가 발발했다. 곧이어 국제축구연맹(FIFA)이 러시아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특별규정을 발표했다. 황인범은 졸지에 '임시 자유계약선수(FA)'가 됐다.

전시 상황이라 쉽게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을뿐더러 카잔으로 복귀하더라도 침공 이전과 같은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상황. 그때, 서울이 손을 내밀었다. K리그의 다른 팀도 관심을 보였지만, 서울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유성한 서울 단장은 3월초부터 재활 중인 황인범과 여러차례 만나 영입을 제안했다. '황인범이 추구하는 축구 스타일과 안익수 감독의 전술이 잘 맞는 부분, 선수와 구단의 동반 성장, 전시 상황에서 러시아로 향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 K리그1의 경쟁력' 등으로 선수를 설득했다. '에이전트 K' 기성용과 '동갑내기 절친' 나상호(이상 서울), 대전 시티즌(현 대전하나 시티즌) 시절 인연을 맺은 김진규 서울 코치도 지원사격했다.
사진(인천)=윤진만 기자

사진(인천)=윤진만 기자

여은주 서울 대표이사의 편지.
마음의 문은 FIFA가 정한 데드라인(4월 7일)을 앞두고 서서히 열렸다. K리그 이적에 대해선 딱히 생각해본 적 없던 황인범은 6월 30일까지인 특별 임대 기간에 서울에 몸담고 그 이후 유럽 무대로 재진출하자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황인범은 그 길로 대전으로 향했다. 유소년 시절부터 알고 지낸 대전팬들과 간담회를 열어 '지금 서울로 가야 하는 이유'를 말하며 눈물로 양해를 구했다. 황인범은 "서울의 진심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황인범은 공식적으로 서울 유니폼을 입은 4월 5일부터 서울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첫 인터뷰에서 "유니폼을 벗는 그날까지 서울이라는 자부심을 갖겠다. 서울의 선수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단숨에 '팬심'을 훔쳤다. 서울팬들은 황인범을 팀에 10년 이상 머문 선수처럼 아꼈다. 서울 구단과 안익수 서울 감독의 배려 속에 발가락 부상에서 회복한 뒤로도 주로 후반 교체로 뛰며 컨디션을 끌어올렸다. 그 덕에 6월 A매치 친선전에서 맹활약할 수 있었다.

때아닌 손가락 부상으로 6월 22일 울산전이 고별전이 될 줄로만 알았다. 황인범은 세계적인 선수와 경쟁하고 싶다며 유럽 진출을 선언했다. 손가락 부상을 치료하면서 유럽 오퍼를 기다렸다. 서울은 작별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다. 계약이 끝난 6월 30일 이후로도 꾸준히 황인범측과 연락을 하며 상황을 살폈다. FIFA가 특별임대 기간을 내년 여름까지 1년 더 연장한 뒤, '두 번째 동행'에 무리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7월초, 황인범이 올림피아코스로부터 구체적인 오퍼를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또 한 번 손을 내민 이유다. '해외 진출이 성사될 경우 조건없이 떠난다'는 파격적인 조건까지 내밀었다.

결국, 황인범의 마음은 또 한 번 움직였다. K리그 추가 등록 마감일인 7월 15일 서울행을 결정했다. 인터뷰에서 직접 밝힌대로, 서울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고의 활약을 꾸준히 펼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있었다. 유럽으로 떠나는 그날까지, 서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첫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두 번째 오피셜이 등장한 16일 곧바로 대구전 엔트리에 든 황인범은 후반 교체 출전으로 극적인 역전승에 기여했다. '역시 황인범'이란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서울과 황인범의 두 번째 동행은 오래가지 않았다. 황인범이 동아시안컵 참가차 일본에 머무르는 사이, 상황이 급변했다. 올림피아코스측에서 황인범의 빠른 합류를 원하며 사실상의 데드라인을 설정했다. 황인범은 오는 30일 포항 원정경기까지 소화한 뒤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챔피언스리그 2차예선 일정을 앞둔 올림피아코스가 서둘러 계약할 것을 요구하면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황인범은 24일 대표팀에서 소집해제되자마자 귀국길에 올랐다. 하루 뒤인 25일 출국을 앞두고 구리GS챔피언스파크를 찾아 선수단과 작별인사를 했다. 그 자리에서 코칭스태프, 프런트, 동료 선수들 등에게 감사 인사를 표하고, 후배 선수들에게 당부의 메시지도 남겼다. 서울 팬들은 이날 늦은 밤 직접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그리스로 떠나는 황인범을 배웅했다. 황인범은 그런 팬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크게 환영받으며 서울에 입단한 황인범은 박수를 받으며 서울을 떠났다.

"FC서울 선수였던 시간이 자랑스럽고 다행이라고 느끼게 해주셨던 팬분들까지 너무너무 감사했습니다. 이 감사함을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더 좋은 선수가 되어가는 모습 보여드리는 걸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팬분들한테 좋은 모습과 결과를 보여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단에 더 많은 사랑과 응원 부탁드립니다."(황인범이 SNS에 남긴 작별사)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