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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키스 게이트'의 주인공인 루이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장이 결국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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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다는 2015년 스페인 여자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달 20일 막을 내린 호주·뉴질랜드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스페인 여자팀 사상 최초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스페인은 빌다 감독 부임 후 강호로 거듭났다. 2019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16강 무대를 밟은 스페인은 지난해 열린 유럽여자축구선수권대회(여자 유로 2022)에서도 8강에 올라 우승팀 잉글랜드와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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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루비알레스 회장이 월드컵 우승 포상으로 선수들에게 이비자 여행을 선물할 것이라면서 '제니와 루이스 루비알레스의 결혼식을 축하할 기회가 될 것'이라는 농담으로 자신의 행동을 가볍게 언급해 또다시 비판의 중심에 섰다.
주요 외신들은 루비알레스의 행동이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인 만큼 광범위하게 보면 성폭력에 가깝다고 일제히 질타했다. 스페인 대표 일간지 엘파이스는 '에르모소는 루비알레스의 키스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리도 그렇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엘파이스는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은 오해였다고 할 수 있지만, 갑자기 (타인의) 입에다가 키스하는 건 '공격''이라며 ''도둑 키스'가 항상 놀랍고 유쾌하게 다가오는 건 아니다. 반대로 그건 침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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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이 커지자 에르모소는 스페인 언론을 통해 시상대 키스 사건을 '자연스러운 애정표현'으로 정리하고 '루비알레스 회장은 대표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에르모스는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다시 "월드컵 우승의 엄청난 환희로 인해 완전히 자발적인 상호 제스처가 취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님과 나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우리 모두에게 본보기가 되는 행동을 보여오셨고, 이는 애정과 감사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우정과 감사의 제스처를 오버해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이 중요한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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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알레스 회장은 자국 대표팀이 대단한 성과를 냈는데도, 직후 자기 행동 탓에 불거진 논란이 더 주목받아 유감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월드컵 우승이) 우리 역사에서 여자축구가 거둔 가장 대단한 성공이라서 더욱 슬프다. (남녀를 통틀어) 스페인의 두 번째 우승을 축하하려는 데, 이 사태가 영향을 줬다"고 고개를 숙였다.
파장은 멈추지 않았다. 에르모소 측이 "처벌받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규탄하고 나섰다. 영국 BBC는 24일 에르모소가 "내가 가입한 노조인 풋프로(Futpro)와 에이전트가 이 문제에 대한 내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풋프로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행위가 반드시 처벌받도록 할 것"이라며 "(축구협회장이) 제재를 받고, 우리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행동으로부터 여성 축구선수를 보호하기 위한 모범적인 조치가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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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또한 에르모소와 23명의 여자대표팀 선수들을 포함한 80명이 넘는 스페인 여자 선수들이 루비알레스 회장이 사임하지 않는 한 대표팀 경기를 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대표팀에 선발된다면 경기에 출전할 의무가 있다고 맞받았다. DPA 통신에 따르면 스페인축구협회는 성명과 함께 에르모소가 루비알레스 회장을 안아 공중으로 들어 올리려는 장면이 담긴 사진 4장을 첨부했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자신의 행동이 사전에 에르모소의 동의를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안아서 들어 올려달라는 게 에르모소의 당시 요청이었고, '가볍게 키스해도 되냐'는 요청에 '그렇게 하라'는 답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르모소는 풋프로를 통해 키스에 동의한 적이 없고, 루비알레스 회장이 언급한 대화 자체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에르모소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서도 "어떤 직장에서도 이런 동의 없는 행동의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며 거듭 입장을 냈다. 주축인 에르모소를 포함한 80여명의 스페인 여자축구 선수들은 풋프로를 통해 성명을 내고 '보이콧'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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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선수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남자 대표팀 수비수 보르하 이글레시아스는 루비알레스 회장에게 반발하며 국가대표 팀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다. 여자 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발롱도르 2회 수상자인 알렉시아 푸텔라스는 여자 선수단 최초로 비난의 글을 SNS에 올렸다. 더불어 전 맨유 골키퍼인 다비드 데 헤아와 레알 마드리드의 레전드 골키퍼 이케르 카시야스도 루비알레스 회장을 성토하는 글을 올렸다.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이 칼을 빼들었다. 루비알레스 스페인축구협회 회장에게 일단 90일간 직무 정지 징계를 내렸다. FIFA는 26일 '호르헤 이반 팔라시오 징계위원장은 징계 규정 51조에 근거해 이날부터 축구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루비알레스 회장의 권한을 잠정적으로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조치는 스페인뿐만 아니라 국제적 활동에도 적용된다'며 '오늘부로 발효돼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90일간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FIFA는 루비알레스 회장이 기습적으로 입을 맞춘 자국 여자 선수 헤니페르 에르모소에게 당분간 접근하지 못하도록 추가 명령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제3자를 통한 접촉도 허용되지 않는다.
FIFA는 "이는 에르모소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징계 절차 중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며 징계 여부 등 최종 조사 결과를 추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징계위의 조치는 스페인축구협회를 비롯해 유럽축구연맹(UEFA)에도 통보됐다. 루비알레스 회장은 UEFA 부회장도 겸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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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비알레스 회장의 직무가 정지되면서 실권을 잡은 페드로 로차 회장 대행은 이날 공식 사과 성명도 발표했다. 로차 회장 대행은 "협회는 루비알레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한다"며 "전 세계 축구계, FIFA·유럽축구연맹(UEFA), 선수들, 특히 국가대표 선수들과 팬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사태로) 스페인 축구·스포츠·사회뿐 아니라 스포츠로서 축구 자체에 가해진 피해가 막대하다"며 "루비알레스는 협회나 스페인 사회가 지지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