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무적함대' 스페인의 2026년 북중미월드컵 우승은 '철학의 승리'였다. 48개국을 통틀어 '이 팀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즉 '철학'이 가장 뚜렷한 팀이 스페인이었다.
8경기 1실점과 7연승, 스페인 특유의 점유율 축구를 기반으로 현대 축구 트렌드에 맞춘 강한 전방 압박과 빠른 역습을 가미해 '진화된 티키타카' 전술로 세계 최정상 고지를 밟았다. 프랑스 전설 티에리 앙리는 "스페인이 구축한 시스템에 찬사를 보낸다"라고 했다. 스페인축구협회는 2022년 카타르월드컵 16강 탈락 후 유명 감독을 선임하는 대신 스페인 각급 연령별 대표를 지휘한 '무명' 루이스 데 라 푸엔테 감독에게 A대표팀을 맡겼다. 스페인 축구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선수와 유대관계가 끈끈한 데 라 푸엔테 감독에게 '미래'를 건 것이다. 데 라 푸엔테 감독은 2022~2023시즌 유럽네이션스리그, 유로 2024에 이어 월드컵 우승컵까지 거머쥐며 '장기 프로젝트'의 적임자란 사실을 증명했다.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번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본 후 일본 축구가 스페인 축구를 배워야 한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고 했다. 스페인의 성공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겪은 한국 축구에도 시사하는 바가 분명하다. 한국은 감독에 따라 빌드업 축구, 스리백 축구 등으로 모습을 휙휙 바꿨다. 스페인은 남녀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이 같은 철학을 공유하며 동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통일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작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은 남아공전에서 '집단 식중독이 걸린 것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뛰지 못하는 문제를 드러냈다. 한국의 이번 월드컵 총 활동거리는 약 33.5km로 48개국 중 43위에 그쳤다. 전력질주(스프린트) 횟수도 1298회로 전체 42위, 볼을 탈환하는 시간(44초64), 즉 압박 효율성은 세 번째로 낮았다. 스페인이 로드리(맨시티)를 중심으로 한 미드필더진의 풍부한 활동량과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거의 모든 경기에서 중원을 장악하며 경기를 '통제'한 것과는 달랐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적한 '체력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모양새다.
대한축구협회(KFA)는 공석인 감독직에 '셀프 추천'하는 구직자들에게 연연할 때가 아니다. 지난 월드컵에서 왜 실패했는지를 분석하고, KFA 차원에서 10년, 20년 뒤에도 유지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우선이다. KFA는 2년 전인 2024년 6월 '한국 축구 기술 철학(MIK, 메이드 인 코리아)'을 야심차게 발표했다. MIK는 스페인처럼 '일관된 시스템 축구'를 지향한다. 스페인이 데 라 푸엔테 감독의 '마법 지휘봉' 때문에 우승한 게 아니란 걸 참고해 MIK를 실행에 옮겨야 한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