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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하순, 겨울의 초입이다. 단풍이 질 무렵, 이젠 겨울바다의 낭만이 부른다. 바다의 매력은 '툭 트임'이다. 갑갑한 일상탈출을 기대한다면 차가움 속에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장쾌함을 찾아 떠나볼 법하다. 쪽빛 바다와 하얀 포말의 청량감을 담아내는 동해안 일원은 온천욕-해돋이와 함께 하는 초겨울 미식거리도 풍성해 '맛 기행'의 최적지가 된다.
요즘 속초, 주문진 등의 포구를 찾으면 싱싱한 도루묵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1만 원에 도루묵 15~20마리를 담아주니 아주 푸짐하다. 즉석에서 굵은 소금 뿌려가며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 먹는 맛도 일품이다. 미식기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추억의 맛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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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조 임금이 오랑캐 침입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동해안지역이었는데, 임금은 이곳에서 묵(묵어 또는 목어)이란 생선을 맛봤다. 이 맛에 반한 임금은 이를 '은어(銀魚)'라 부르도록 했다. 임금이 하사한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묵은 한순간에 귀한 몸이 됐다. 뒤에 궁궐로 돌아온 임금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은어'를 잡아오게 했다. 하지만 피난길에서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묵으로 부르게 하면서 '도루묵'이란 이름이 생겼다.
이 얘기가 다소 설득력이 있는 게 옛날에도 도루묵을 '환목어'(還目魚)라 불렀던 기록이 있다. 조선 인조 때 문신 이식은 강원도 간성군수로 좌천됐을 때 자신의 처지를 도루묵에 빗대어 '환목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도루묵이란 이름은 돌메기나 돌목 따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많다고도 주장한다. 바위나 돌이 많은 바닥에서 주로 사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광스토리텔링 차원에서는 재미없는 풀이다.
도루묵 어원을 둘러싼 무성한 말들이 결코 중요하지는 않다. 이무렵 도루묵 그 자체가 맛나기 때문이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