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은 계곡과 여울을 헤엄치는 물고기조차 살이 오르는 때다.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10월 8일)를 지나 가을이 무르익을 즈음이면 떠오르는 별미가 있다. '오모가리탕'이다. 오모가리탕은 쉽게 얘기하자면 민물매운탕이다. 대한민국 미식의 본향 전주에서는 이 민물매운탕이 '오모가리탕'이라는 이름의 요리로 특화 되어있다.
이들 오모가리탕은 예전에는 전주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를 주로 썼다. 하지만 요즘은 진안 용담댐 등 외지 것을 가져다 쓰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근자에 들어 전주천에 수달이 등장해 물고기가 많이 줄어든 것도 한 이유가 된다. 비록 물고기를 수달과 나눠야 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만큼 전주천의 수질이 좋아졌다는 반가운 소식이기도 하다.
오모가리탕이 유독 전주 사람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것은 소박한 풍류를 줄기기에 적당한 별미이기 때문이다. 한겨울만 아니라면 전주천변 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둘러 앉아 오모가리탕을 맛볼 수가 있으니 이만한 유유자적이 또 없을 터다. 얼큰한 탕을 안주삼아 막걸리사발 몇 순배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상 씻김이 되는 것이다.
전라도 음식의 특징 중 하나는 들깨와 들기름을 곧잘 사용하는 것이다. 오모가리탕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단 옴팍한 오모가리에 말렸다 불린 시래기를 깔고 그 위에 내장을 제거한 쏘가리 등 민물고기를 얹은 다음 들깨물과 육수를 붓는다. 이때 육수는 간수를 뺀 소금물만을 사용한다. 이는 민물고기 본래의 맛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여기에 민물새우와 통들깨, 다진 마늘, 파 등을 썰어 넣고 20~30분간 보글보글 끓여내면 얼큰한 오모가리탕이 완성된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가을 민물새우는 국물에 시원한 풍미를 더해주는 감초와도 같은 존재다. 때문에 아예 민물새우만으로 탕을 끓여도 맛나다.
은근하게 달궈진 질그릇, 오모가리는 밥을 두 공기씩 비울 때까지도 뜨끈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으니 탕 맛이 더 좋을 수밖에 없다. 오모가리탕의 매력이다.
오모가리탕의 또 다른 백미는 갓 지은 쌀밥이다. 매번 손님을 받을 때마다 밥을 새로 지어 주기도 하는데, 일본의 고시히카리 쌀밥 못지않게 윤기가 흐른다. 특히 가을철 햅쌀밥은 잘 담근 김치 하나만으로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을 만큼 맛나다. 따라서 얼큰한 오모가리탕과 햅쌀밥의 조합이란 최상의 궁합을 이룬다.
전주의 맛집은 기본적으로 밑반찬이 탄탄하다. 내가 찾았던 오모가리탕집에서는 고들빼기김치, 갈치젓에 담근 고추 장아찌, 조선간장으로 짭짤하게 쪄낸 깻잎 등 여남은 가지 반찬이 상을 가득 메웠다. 밥 한술 뜰 때마다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귀한 것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맛깔스런 밑반찬도 오모가리탕의 시래기에는 견줄 수가 없다. 지난 겨울부터 시나브로 말려온 시래기와 우거지가 살찐 가을 물고기와 만나니 그야말로 영양덩어리 그 자체다. 한 가닥 죽 찢어서 쌀밥위에 얹어 먹자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마무리는 바삭바삭한 누룽지다. 인심 좋은 주인아주머니는 밥을 퍼낸 솥단지에서 떼어낸 둥글 넙적한 누룽지를 한 움큼 쥐어 준다. 전주의 정(情)이다.
맛난 별미를 먹고 전주 구경은 어디가 좋을까? 역시 전주는 한옥마을 중심으로 연계 여정을 꾸리는 게 무난하다. 한옥마을을 둘러보고 한복체험, 거리음식 등을 맛보는 젊은이들 사이에 섞이면 생기도 덤으로 얻을 수 있다. 한옥마을 인근에는 오래된 전동성당, 이성계의 어진이 있는 경기전과 한벽루가 있고, 남부시장에서는 전통시장의 묘미에 젊은 청년들이 펼치는 다양한 문화실험들도 함께 접할 수 있으니 더욱 신선하다.
김형우 문화관광전문 기자 hwkim@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