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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에 발목 잡힌 '차기 총수'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 지배구조 개편 묘수는?

이정혁 기자

기사입력 2018-05-23 07:39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미국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전방위적 공세에 발목이 잡혀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1일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을 골자로 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주주총회 1주일가량 앞두고 전격 철회한 것. 이는 엘리엇 뿐만 아니라 ISS·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로 지배구조 개편안 통과가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

차기 총수인 정의선 부회장은 이날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지배구조 개편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순환출자구조 해소 등 정부의 압력을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엘리엇 등 주주들의 이익까지 만족시키는 '솔로몬의 묘안'이 당장 눈에 띄지 않아 정 부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22일 현대차그룹 등에 따르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지난 21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현재 체결되어 있는 분할합병 계약을 일단 해제한 후 분할합병 안을 보완·개선하여 다시 추진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달 29일 열릴 예정이었던 양사 임시 주주총회는 취소됐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글로벌 경영환경 변화와 규제환경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하고 공식 발표했다. 그 핵심 내용은 현대모비스의 사업 중 모듈사업 부문과 AS부품사업 부문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 합병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정의선 부회장 부자→존속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지배구조를 간소화한다.

현대차그룹은 이 개편안이 자동차 사업 부문별 전문성을 강화해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높이는 동시에 순환출자 등 국내 규제를 모두 해소하는 최적의 안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특히 재편 과정에서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가 1조원에서 최대 2조원에 달하는 양도세를 납부하기로 해 재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시장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안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이 개편안을 보완하고 재검토하기로 한 것은 개편안에 대해 주주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반대 여론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확산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개편안이 주주총회에서 부결되면 그동안 개편안의 당위성과 공정성을 주장해온 그룹 이미지에 타격이 불가피하고, 완전히 새로운 내용의 개편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무엇보다 과거 삼성그룹을 공격한 바 있는 엘리엇이 "분할·합병 비율이 현대모비스 주주에게 불리하며 사업 논리·정당성이 부족하다"는 논리를 내세워 현대차그룹을 흔들었다. 게다가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엘리엇의 논리와 비슷한 이유로 반대 의견을 내면서 개편안 통과 여부가 점점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특히 외국인 주주에게 영향력이 큰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캐스팅 보트'를 쥔 국민연금공단과 자문 계약을 맺은 한국기업지배구조원마저 반대를 권고하면서 시장에서는 개편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결국 현대차그룹은 무리하게 개편안을 밀어붙이기보다 시간을 두고 개편안을 수정·보완하면서 주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결정과 관련해 정의선 부회장은 '구조개편안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자료를 통해 "그동안 그룹 구조개편안 발표 이후 주주분들과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다"고도 했다. 이어 "현대차그룹은 더욱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 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지배구조 개편 방안을 보완해 개선토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그룹이 새로운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놓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한번 중도에 접은 경험이 있는 만큼 다음번에 개편을 추진할 때는 주주들과 정부를 모두 만족시켜 주총 통과를 자신할 만한 수준으로 마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당국에서 순환출자 해소를 계속 압박하는 만큼 시간적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개편안 수정 방향과 관련해서는 현재의 지배회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모비스와 글로비스 간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이나 추가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병행하는 방안 등이 업계에서 거론된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이사는 "현대차그룹은 앞으로 기존안대로 추진하되 정의선 부회장 측 손해를 감수하고 분할 현대모비스 가치를 높여 합병비율을 조정하거나 현대모비스를 먼저 분할해 존속회사와 분할회사를 동시에 상장시키는 식으로 시장이 가치를 결정하게 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거나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먼저 상장시키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엘리엇 등이 주장한 지주사 출범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꼽힌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분할한 뒤 투자 부문을 합쳐 지주사를 세우는 것. 그러나 실행 여부는 매우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동안 현대차는 "지주사 전환을 하면 금산 분리 규제 때문에 자동차 판매에 필수적인 캐피털 등을 떼내야 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기 때문. 자동차 판매는 보통 할부금융을 끼고 이뤄지는데, 금산 분리 규제로 금융회사를 분리하게 되면 현대차 판매 감소와 이익 감소로 직결된다. 주요 글로벌 차 업체는 대부분 금융 계열사를 갖고 있다

일단 현대차그룹은 개편안 보완 및 재검토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법이니 시기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다만 기업 가치 제고를 통한 주주 환원 정책은 가속화해 나갈 방침임은 분명히 했다. 정의선 부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고 생존과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며 "자동차 사업 본연의 경쟁력과 기업가치를 극대화하고 주주 환원으로 선순환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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