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은 슬로프 위의 수지이고 아이유다 '
▶스키 마니아들의 연예인 '데몬', 선발되기 힘든 만큼 영향력도 막강
그러나 '겨울 스포츠의 꽃'이라 불리던 스키 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2008년 663만명을 기록했던 국내 스키장 방문객 수는 2018년 435만명까지 급감했다. 올해는 코로나19에 의한 영업정지로, 감소 폭이 더 커질 전망이다. G마켓의 지난해 12월 25일~1월 24일 스키·스노보드 의류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4% 급감했다. 같은 기간 장비 판매량 역시 51% 감소했다. 자연스럽게 스키 관련 특정 업체나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도 대폭 하락했다.
이에 스키용품 업체들은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이 일치했다는 의미)의 경지에 이른, 마니아에게 차츰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스키 인구 수는 감소 추세지만,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스키장을 찾는 마니아층의 스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여전히 견고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일반인들은 '한 시즌 쓰고 마는' 계절 스포츠를 위해 큰 돈을 쓰지 않는다. 반면 마니아들은 시즌이 다가오면 매 주말 혹은 시즌 내내 스키장을 주요 활동 반경에 포함시키고, 대부분의 시간을 스키장에서 보낸다. 그만큼 관련 의류나 용품 구매에 적극적이다. 유행에도 민감해 신제품 구매를 망설이지도 않는다. 스키 시장이 이제는 대중이 아닌, 특정 브랜드에 열렬히 충성하면서 높은 구매력을 자랑하는 마니아 층이 주도하는 시장이 됐고, 이들을 적극 공략하는 브랜드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된 것.
따라서 이들의 시선을 끄는 셀럽으로서 데몬이 산업 전체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데몬이란 대한스키지도자연맹이 선발하는 스키어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키지도자를 일컫는다. 대한스키지도자연맹은 데몬을 '최신 스키기술과 지도법을 보급하고 올바른 스키 문화를 전파하는 스키 전도사'라고 정의하고 있다.
데몬의 임기는 1년이며 매년 선발대회를 통해 약 30명 내외 인원을 선발한다. 데몬으로 선발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한스키지도자연맹이 인증하는 레벨3 자격을 보유한 뒤 전국스키기술선수권대회, 데몬 선발전, 면접 등의 전형을 거쳐야 한다.
기술선수권대회는 예선 4종(숏턴·미들턴·롱턴·종합활강), 준결승 2종(롱턴·모글), 결승 2종(대회전·숏턴)을 합해 총 8종목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순위 가운데 남자 50위, 여자 10위 이내에 속하면 데몬 선발전 출전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데몬 선발전에서는 기초종목 테스트를 비롯, 플루그보겐·스탠다드슈템턴·프로그레시브슈템턴·스탠다드패러랠롱턴·스탠다드패러랠숏턴 중 한 종목으로 시험을 치른다.
올해는 총 428명의 실력자들이 기술선수권대회에 참가했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15일 단 30명(남자 24명, 여자 6명)만이 데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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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마케팅에 주목하는 스키업계
데몬들은 스키 산업 관련 브랜드들이 눈여겨 봐야 할 이른바 '인플루언서'다.
데상트, 골드윈, 피닉스 등 일본산이 대세였던 스키복 시장에서 '카브(CARVE)코리아(이하 카브)'는 데몬을 적극 활용, 국내 토종 브랜드로서 파란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카브는 2006년 브랜드 론칭 이후 줄곧 데몬들을 앞장서서 후원해 왔다. 현재 카브 소속 데몬은 총 20명. 양성철(경기도 장애인팀 감독), 김준형, 주현식, 최성호, 김경배, 박수인 등이 적극 활동하고 있다.
카브는 이들 데몬의 의견을 적극 제품 디자인 등에 반영하고 있다. 스키 활주 시 동작을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과 색상, 지퍼 위치, 옷의 무게, 보온성, 사이즈 등 개개인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제품 개발에 반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카브에서 진행되는 광고 역시 이들을 모델로 활용한다. 현재는 2019년 선발된 최성호 데몬을 메인 모델로 발탁, 퍼포먼스 높은 스킹 이미지를 브랜드에 반영해 매출 성장 및 인지도 제고에 나서고 있다. 때문에 카브 제품에 대한 데몬들의 인기 및 신뢰도는 매우 높은 편이며, 이들이 카브 제품을 착장한 뒤 각종 대회에 출전해 높은 성과를 거두는 모습으로 브랜드 노출 및 마케팅이 진행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일찍이 스키 전문 브랜드로 공고한 입지를 다져온 데상트 역시 일본 스키 선수권 대회에 출전하는 데몬들을 통해 아시아인 체형에 적합한 상품을 개발해왔다. 또한 인스파이어드(팀레플리카) 상품 라인을 통해 시장성을 확대해왔다.
데상트 코리아는 박시현, 배호성, 정다솔 등 3인의 데몬을 후원 중이다. 지난해에는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스키 의류를 출시하기도 했다. 데몬은 전문가 입장에서 디자인, 핏, 소재, 보온성 등에 대한 피드백을 전해주고 데상트 코리아는 이들 통해 더 나은 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데상트 코리아 관계자는 "후원 데몬과 기능적 디테일에 대한 의견 교환으로 신제품에 차별성을 더해왔다"며 "데몬을 통한 온·오프라인 브랜드 노출 및 브랜드 협업 스키 클래스 진행 등의 마케팅 활동이 매출 확대에 긍정적인 기여를 해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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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인구의 저변 확대를 고민하던 시절은 끝났다. 요즘 스키용품 업체들의 최고 과제는 '덕업일치' 수준의 마니아들을 늘리는 것이다. 고객 1인당 평균 매입액인 '객단가'을 올리기 위한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더 이상 현실에서 마주할 일이 거의 없는 톱스타들이 먹거나 바르는 '척'하는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다. 아예 자신과는 다른 세계 속 사람으로 인식, 분리시켜 버리고 만다. 대신 대중들은 이제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맺기'가 가능한 이들에게 관심과 흥미를 가지며, 이들이 직접 사용하거나 추천하는 제품에 대한 선호도 역시 매우 높게 형성된다.
스키 인구는 감소하고 있으나 이러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서 지적한 대로, '움직이는 광고판'인 데몬들이 자주 입거나 찾는 아이템 순위 안에 들어야만 롱런이 가능하다. 프로급 실력과 관심, 애정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을 위한 정밀한 기획과 마케팅이 동반돼야 함은 물론이다.
카브코리아 임용범 대표는 "카브 초창기 시절은 소비자들이 수입 브랜드를 선호했으나 데몬이 소속 선수로 합류하면서 수입 브랜드와 견줄 만한 브랜드로 인지도가 향상됐다"며 "데몬들은 스키업계의 대표 아이콘이며 패션 장비 유행 및 유통에 지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전문성 또한 마니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포인트다. 1950년대부터 스키웨어 개발을 시작한 데상트의 경우, 데몬 마케팅과 더불어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을 비롯하여 스위스, 캐나다, 독일, 스페인과 같은 글로벌 스키팀 스폰서십과 세계적인 스포츠 박람회인 독일 ISPO에서의 수상 등을 통해 전문적 이미지를 공고히 해왔다. 올해는 내년 열릴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진행.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더욱 힘쓸 구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열린 '전국스키기술선수권대회' 참가자 중 최고령자가 60세였다. 오랫동안 취미 이상으로 스키를 즐긴 이들은 단순 겨울 나들이로 스키장을 찾는 이들에 비해 훨씬 소비 규모가 크다"며 "높은 충성도에서부터 탄탄한 구매력까지 갖춘 소수 마니아들을 적극 공략하는 방식으로의 전략 변화를 적극 고민해봐야 하며, 이를 위해 데몬 등 업계 셀럽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jjangga@sportschosun.com·조민정 기자 mj.c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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