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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와 닛산의 18일 합병 전격 발표는 2024년 연말 자동차 업계를 달구는 가장 뜨거운 뉴스가 됐다. 어느 정도 예견됐던 합병이지만 실제 올해 성사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합병이 제대로 추진될 경우 올해 예상 판매 대수에서 750만대로 현대차그룹(720만대)을 제치고 세계 3위로 올라선다. 올해 1위는 토요타(980만대), 2위 폭스바겐그룹(850만대)으로 예상된다.
이미 혼다와 닛산은 올해 3월 전기차 플랫폼 및 차량 SW를 공동 개발하기 위한 제휴를 체결했다. 매년 10조원 이상 들어가는 거액의 개발 자금을 분담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8월 구체적인 플랜까지 발표하면서 두 회사 합병 기류가 돌았다.
이미 일본 정부는 혼다-닛산 합병 시나리오에 대해 여러 가지 긍정적인 의견을 내놓은바 있다. 2019년 르노-닛산 사태가 터지고 닛산이 르노와 갈라서면서 이런 논의에 불을 지폈다.
일본 산업성은 닛산이 혼다와 합병해 일본 자동차 업계가 범 토요타그룹과 혼다-닛산연합그룹 2개로 재편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속내를 여러번 드러낸바 있다.
하지만 이번 합병 발표가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여진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비율로 두 회사의 지주 회사에 주식 지분을 출자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바 없다. 상당 부분 내분도 일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혼다와 닛산은 기업결합에 대한 양해각서(MOU)를 다음주 체결하고 지주회사를 설립해 두 회사가 그 산하에 들어가는 방식으로 합병이 이뤄진다. 닛산이 최대주주로 있는 미쓰비시자동차까지 가세할 가능성이 크다. 혼다와 닛산은 현재 지주회사 통합 비율 등 세부 사항을 논의 중이다.
닛산 전기차 아리야(Ariya)
업계에서는 세계 7위인 혼다, 8위인 닛산의 차가 크지 않아 1대1 지분 출자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일말의 변수는 닛산 계열의 미쓰비시자동차가 얼마만큼 지분을 가져갈지 관심이 가는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전격 합병의 가장 큰 원인으로 BYD로 대표되는 중국 전기차의 가성비(가격경쟁력)를 내세운 해외 진출을 꼽는다.올해 BYD가 테슬라를 제치고 세계 1위 전기차 업체로 등극했다.
2024년 10만대 판매가 예상되는 샤오미 SU7
특히 BYD는 그동안 일본 자동차 업체의 아성으로 불리던 태국,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를를 비롯한 동남아 시장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올해 이들 국가 전기차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세계 자동차 업계를 리드했던 일본 자동차 업체는 유독 전기차 분야에서는 후발주자로 뒤처졌다. 하이브리드가 강세인 토요타는 전략적 판단에서 전기차 출시를 유보한 것에 비해 혼다와 닛산는 별다른 전기차 개발과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혼다는 2021년 전기차 플랫폼 독자 개발 대신 GM 얼티엄 플랫폼과 배터리를 이용해 자사 전기차를 출시한다는 제휴를 맺었다. 거액의 개발비를 줄이려는 혼다의 고육지책 선택었지만 결과적으로 전기차 1대를 내놓고 이 계약은 무효가 됐다. 전기차 플랫폼을 자체 개발하지 않는 이상 가성비 측면에서 뒤져 이익을 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닛산 N7
닛산은 사실상 르노와 결별한 이후 중국 닛산둥펑자동차를 중심으로 보급형 전기차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에 투입한다는 전략을 세웠지만 제대로 실행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닛산은 지속된 경영악화로 올해 10월 글로벌 생산규모 20%, 인원 9000명 감축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자동차 업계는 미래 모빌리티 전환을 대비하려면 수 십조원의 개발비 투자가 필요하다. 전기차 플랫폼뿐 아니라 관련 SW, 더 나아가서는 자율주행 기술을 뒤쫓아야하는 운명이다.
혼다 e:Ny 1
여기에 IT분야의 글로벌 업체들이 속속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거대 IT기업 샤오미의 전기차사업 진출이다. 이미 샤오미는 2023년말 스포츠 전기 세단 SU7을 출시하면서 올해만 10만대 판매에 달할 만큼 대박을 기록했다. 샤오미는 자신감을 얻고 내년 SUV 등 라인업을 확장한다.
샤오미뿐만 아니라 화웨이 역시 전기차를 미래 신사업으로 설정하고 베이징자동차에 생산을 위탁해 자체 개발 전기차 5종을 이미 중국에서 시판하고 있다. 내년에는 해외 수출에도 나선다는 전략이다.
이런 가운데 닛케이의 또다른 시각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위탁제조업체인 대만 폭스콘이 올해 전기차를 출시하면서 닛산의 지분 인수를 시도할 가능성이 나온 것이 이번 혼다-닛산 합병을 앞당긴 것이라는 분석이다.
폭스콘
닛케이에 따르면 “폭스콘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프랑스 르노가 신탁은행에 맡긴 닛산 주식지분 22.8%를 주목했고 폭스콘은 이를 매입해 사실상 닛산 인수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 전문가는 "폭스콘의 닛산 지분 인수 시나리오는 올해 일본 금융권에 공공연히 떠돌았던 근거 있는 소문“이라며 ”폭스콘의 이런 적대적 인수를 피하기 위해 닛산이 먼저 혼다에 합병 제안을 내놨다“고 언급했다.
두 회사의 경영 통합이 성사될 경우 글로벌 자동차 시장도 크게 재편된다. 다만 이들의 통합이 성공하려면 미국 등 각국 경쟁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BYD 주력 수출 세단 '씰'
이번 합병은 미래 모빌리티 전쟁의 서막일 뿐이라는 시각도 나온다. 현재 180개에 달하는 중국내 전기차 기업의 인수합병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2030년까지 중국에서 많게는 10개, 적게는 5개 정도의 거대 전기차 기업으로 정리될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혼다-닛산 합병이 성사될 경우 지난해 글로벌 신차 판매기준으로는 1위 토요타(1123만3000대) 2위 폭스바겐(924만대)에 이어 혼다·닛산·미쓰비시연합(813만대)이 올라선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30만4000대였다.
김태진 에디터 tj.kim@cargu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