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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주요국 중 여론조사 경선은 한국이 유일?

기사입력 2025-05-08 07:15

[김토일 제작] 일러스트
(포츠머스 AFP=연합뉴스) 2024년 1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호텔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유세장이 지지자들로 가득 찼다. 지난 15일 공화당 경선 첫 레이스인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한 트럼프는 오는 23일 열릴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앞둔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2024.01.18 kjw@yna.co.kr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1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한 한 프랑스 여성. 그는 딸과 함께 투표 독려 팻말을 들고나왔다. 2024.6.16 san@yna.co.kr
민주당 노무현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의원이 단일화 첫날인 2002년 11월 25일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대선승리를 밝히고 있다./박창기/정치/ 2002.11.25 (서울=연합뉴스) changki@yna.co.kr <저작권자 ⓒ 2002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정연주 제작] 일러스트
한국, 2000년대 상향식 공천 도입에 여론조사 활용

미일 등 주요국은 주로 투표·심의로 경선 후보 결정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오는 6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후보 경선이 마무리된 가운데 주요국 중 우리나라만 정당이 공직 선거 후보 결정 시 여론조사 경선을 한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가 관심을 끌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우리나라 정당이 여론조사에 과도하게 의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데, 정당의 공천과정에서 여론조사 경선을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뿐일까.

우선 '여론조사 경선'이라는 개념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다. 경선 결과가 여론조사만으로 판가름 난다는 뜻이라면 우리나라는 이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번 대선 후보 선정 과정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은 1차 경선(컷오프)에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100%로 후보를 4명으로 추리고 2차 경선에선 당원 투표와 국민 여론조사를 각각 50% 반영해 결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권리당원 투표 5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 50%를 반영하는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했다.

양당 모두 여론조사만으로 대선 후보를 선출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론조사 경선'이 후보 결정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의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주요 선진국 가운데 여론조사를 공천에 적극 활용하는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 미국은 당원·유권자 투표로…일본 여론조사 드물어

미국에선 정당의 공직 후보 선출과정에 여론조사가 개입되지 않는다. 당원 또는 일반 유권자의 투표로 후보가 결정된다.

국회입법조사처의 연구보고서 등에 따르면 각 정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는 원칙적으로 전국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 투표로 결정된다. 대의원 과반의 지지를 확보한 후보가 그 당 대선 후보가 된다.

대선 후보를 뽑는 대의원들은 주별로 선출하고, 이 주별 경선은 순차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라 전국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에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사실상 결정될 수도 있다. 주별 경선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대략적인 판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국회의원 후보 선출은 사실상 대선 후보 선출 방식과 같다.

미국의 연방 의회는 상원(임기 6년)과 하원(임기 2년)으로 구성되며, 하원 전원과 상원의원 3분의 1이 2년마다 처리지는 총선에서 선출된다.

이때에도 각 정당은 대선과 마찬가지로 주별로 코커스 또는 예비선거로 후보를 선출한다.

일본에선 후보가 우리나라의 공천에 해당하는 정당 '공인'(公認)을 받거나 혹은 정당의 '추천', '지지' 등을 받아 출마한다.

공인은 정당이 해당 후보자가 자당 후보로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다. 추천은 타당 또는 무소속 후보와 협력하는 방식을 말하며, 지지는 추천은 하지 않으면서 해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는 형태다.

일본의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은 기본적으로 현역 의원을 우선 공천한다.

새 후보를 물색해야 할 경우 후보 모집→지역 추천 및 심사→중앙당 승인의 단계를 거쳐 후보를 결정한다.

과거엔 총재나 간사장이 후보를 결정했으나 2000년부터 공모제가 본격적으로 확산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의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2022)에 따르면 자민당은 2010년 참의원(상원) 선거 때 일부 선거구에서 공모 및 당원 투표로 후보를 결정하는 극적인 변화를 시도했다.

예비 후보가 복수일 경우 여론조사 방식의 당내 경선을 실시하는 사례도 있었다.

일본 민주당은 당내 경선이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당이 비례로 돌리거나 양보케 하는 등의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를 조율했다.

결론적으로 일본도 여론조사를 주된 수단으로 거의 활용하지 않고, 중앙당과 지구당 간 협의 또는 중앙당의 주도로 공직 후보를 결정한다.

◇ 유럽 주요 국가는 당내 기구 등이 후보자 결정

'각국의 선거제도 비교연구' 등에 따르면 영국은 후보 선출의 구체적인 권한이 지구당에 있고 중앙당은 일종의 후견인 역할을 수행한다.

영국 보수당의 경우 중앙당이 총선 주기에 맞춰 '적격 후보 명부'를 운영·관리하고 지구당은 이 명부에 포함된 후보를 인터뷰해서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노동당의 경우 지구당에서 당원들의 투표로 최종 후보를 선출한다. 노동당에선 현역 의원이 지역구에서 과반수 신임을 얻으면 재출마할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 다른 후보들과 함께 경선을 치러야 한다.

단, 의회 해산에 따른 조기 선거가 치러질 경우 지구당 공천 절차가 생략되고 중앙당이 직권으로 후보를 선출할 수 있다.

프랑스는 중앙당의 권한이 센 편이다.

여당인 '전진하는 공화국당'은 당 대표가 추천한 당원으로 구성된 공직 후보 공천위원회가 후보를 정한다. 사회당은 해당 선거구 당원들의 투표로 후보를 선출하되, 당 집행부가 후보들에 대한 사전 검증을 실시한다. 공화주의자당은 주로 당 간부로 구성된 공천위원회에서 후보 명단을 작성한다.

독일은 선거법에서 후보 추천 시기와 과정 등을 규정하고 있는데, 당원 총회 또는 당 대의원 회의에서 비밀투표로 공직 선거 후보를 선출하도록 했다.

이는 후 선출은 당원만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가 관여할 수 있는 통로는 없다.

스페인의 집권당 사회노동당(PSOE)은 그동안 당원만 참여하는 당내 경선을 하다가 2015년에 총리와 자치주의 주지사 등 주요 선거의 경우 완전국민경선제를 도입했다.

국민당은 총리 후보의 경우 과거엔 당 대표 및 당 의회의 지명으로 후보자를 추천해왔다가 2017년부터 투표를 통한 당내 경선으로 후보를 선출하고 있다.

스웨덴에선 각 정당의 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결정하되 당내 경선에 대한 요청이 있을 경우 투표를 통해 후보를 확정한다.

스위스에선 주로 지명으로 후보를 결정한다. 사회민주당(SP)은 선출 의원들로 구성된 당내 의원단이 후보를 지명한다. 후보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후보들을 면접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는 정당 내부 기구가 심의나 회의 등을 거쳐 공직 선거 후보자를 결정하고, 당내 경선을 할 경우엔 주로 당원들이 참여하는 투표로 결정했다.

당원이 아닌 국민참여경선이 실시되더라도 이때도 참여 방식은 투표였고, 여론조사의 점수를 반영하는 방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 한국, 상향식 공천 도입에 여론조사 활용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경선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이는 정당 공천의 민주화 과정에서 도입된 제도라는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3김 시대'라 불리는 과거 한국 정치에서는 당 총재가 공천권을 독점해 계파 줄 세우기나 '공천 장사' 등과 같은 폐해가 적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도입된 것이 상향식 공천이다.

선관위와 관련 논문에 따르면 2000년 6월 재·보궐 선거에서 여야가 처음으로 당원이 직접 후보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을 진행했다.

2002년 대선에선 당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공천 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국민참여경선'이 도입되며 우리 정치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으로 전국적 관심을 모았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이는 국민참여경선이 이후 공직 선거에서 정당 공천의 '상수'로 자리를 잡게 된 계기가 됐다.

선거연수원이 발간하는 학술지 '선거연구'에 실린 '한국의 민주적 정당공천제'(2014)란 논문에 따르면 정당 공천의 민주화 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가 후보를 누가 선출하느냐이다.

이를 '선출단의 포괄성'(inclusiveness of the selectorate)이라고 하는데, 당 대표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가장 배타적인 방식에서부터 전체 유권자가 결정하는 가장 포괄적인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앞서 보았듯이 주요 선진국에서 당원이나 대의원이 후보를 선출하는데 이는 이 양극단의 사이에 있는 형태다. 국민참여경선은 이보다 더 포괄적인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여론조사는 정당 공천이 이같이 상향식으로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도입됐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와 정몽준 당시 국민통합21 후보 간 단일화가 여론조사 결과로 결정됐는데, 여론조사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좌우한 첫 사례로 꼽힌다.

이어 2004년 총선, 2006년 지방선거, 2007년 총선 등 이후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본격적으로 정당 공천에서 적합한 후보자를 결정하는 한 방식으로 쓰였다.

이 가운데 2006년 지방선거와 2007년 대선을 통해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국민에게 강하게 인식됐다.

2006년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오세훈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선 맹형규 후보에게 뒤졌지만 여론조사를 반영한 결과 역전승을 거두면서 "민심이 당심을 뒤집었다"는 말이 인구에 회자됐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이명박 당시 후보가 선거인단 투표에선 박근혜 후보에 밀렸으나 여론조사 결과에서 앞선 덕분에 최종 후보자로 선출됐다.

◇ 여론조사 경선 문제점도…"자발적 참여 부족 현실 반영"

여론조사의 활용이 항상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만은 아니다. 언론뿐만 아니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여론조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여론조사는 우리 정치사의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서 '민심'을 반영하든 '당심'을 반영하든 투표가 일반적인 의사 표현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투표 대신 여론조사가 주로 활용된 것은 자발적 참여 부족이라는 현실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강원택 당시 숭실대 교수는 '당내 공직 후보 선출 과정에서 여론조사 활용의 문제점'(2009)이란 논문에서 "각 정당이 여론조사 방식에 주목하게 된 것은 국민참여경선 방식과 같은 개방적 참여는 필요하지만 동원의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당 행사에 참여하는 당원이나 대의원들은 대부분 현역 의원이나 당원협의회 의장과 연계돼 동원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고 실제로 동원 논란도 있었다.

여론조사 방식은 또한 역선택으로 인한 대표 선출의 왜곡, 정당정치의 약화, 정치적 책임성 약화 등의 문제가 있다고 거론되고 있다.

윤정인 고려대 법학연구원 연구교수는 '정당공천의 기준으로서 여론조사 활용의 헌법적 문제점'(2019)에서 여론조사 공천으로 인해 "정당원으로서 정당의 내부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당원의 권리나 정당의 소속원으로서 공적 선거에 출마해 공정한 기회를 갖고자 하는 후보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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