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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높이되 혜택도 강화…차별화·희소성 방점
불경기로 고객 확대가 여의찮은 상황에서 매출 기여도가 큰 소수의 VIP만은 묶어두겠다는 이른바 '집토끼 지키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2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백화점은 올해 들어 우수고객 프로그램(에비뉴엘)을 일부 개편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최상위 등급인 '에비뉴엘 블랙'의 변화다. 그동안에는 등급 인원을 공개해오지 않다가 올해부터 연간 구매 금액 기준 상위 777명으로 설정했다. 최상위 고객의 범위를 분명히 해 차별성을 부여하려는 취지다.
롯데백화점은 두 번째 등급인 에비뉴엘 에메랄드의 연간 구매 금액 기준을 1억원에서 1억2천만원으로, 에비뉴엘 오렌지는 본점과 잠실점, 부산본점, 인천점에 한해 2천500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물가 상승과 함께 등급별 인원이 불어나면서 우수고객 관리가 어려워지자 지난해에 이어 다시 등급 문턱을 높인 것이다.
이와 동시에 세 번째 등급으로 에비뉴엘 사파이어(8천만원 이상)를 신설해 등급을 좀 더 세분화했다.
에비뉴엘 퍼플(5천만원 이상)과 그린(1천만원 이상)은 기존과 같다.
롯데백화점은 대신 등급별 혜택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본점과 잠실점의 VIP 라운지도 지난 2023년부터 차례로 재단장했다.
최상위 에비뉴엘 블랙의 경우 내년부터 등급 회원에게 적용될 혜택 프로그램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중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변경된 우수고객 프로그램에 맞게 최상위 고객에게는 개인 맞춤형(커스터마이징)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등급별로 차별화한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지난해 VIP 등급 산정 기준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최상위 트리니티 등급 인원은 999명으로 한정하고 연간 구매 금액 1억2천만원 이상의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을 신설했다.
다이아몬드는 금액 기준을 6천만원에서 7천만원으로, 플래티넘은 4천만원에서 5천만원으로, 골드는 2천만원에서 3천만원으로 각각 상향했다.
이 밖에 에메랄드는 800만원에서 1천만원으로, 레드는 4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나란히 변경했다. 신세계가 등급 산정 기준을 높인 것은 2012년에 이어 12년 만이다.
신세계는 그러면서 점포별로 VIP 라운지를 확장 개설하는 한편 최상위 고객을 대상으로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셰프와 협업한 '파인다이닝'(고급 미식)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혜택을 강화했다.
세 개의 VIP 등급을 운영하는 현대백화점 역시 지난 2023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우수고객 산정 기준을 높였다. 최상위 쟈스민 블랙은 1억2천만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쟈스민 블루는 8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각각 올랐고 쟈스민은 5천500만원에서 6천500만원으로 상향됐다.
백화점 우수고객에게는 기본적으로 전용 라운지 이용, 무료 주차, 할인쿠폰 제공 등의 혜택이 제공된다. 여기에 등급별로 차등화한 추가 혜택이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마다 우수고객에 대한 차별성과 희소성을 확실히 하고자 등급 산정 기준을 높이되 혜택은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백화점 업계가 이처럼 우수고객 관리에 신경을 쓰는 것은 이들의 매출 기여도가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백화점별로 VIP 등급을 가진 우수고객의 매출 비중은 50%에 육박한다.
롯데는 2020년 35%에서 지난해 45%로 높아졌고 같은 기간 신세계는 31%에서 45%로, 현대는 38%에서 43%로 각각 올라갔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업계에서 유일하게 지난해 기준 우수고객 매출 비중이 51%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0년(42%)보다 9%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특히 경기침체기 백화점 충성고객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경제가 어려울 때도 이들의 구매력은 경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판매 부진에 시달리는 백화점엔 우수고객이 매출을 떠받치는 버팀목인 셈이다.
한 백화점업체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소비력이 약화하고 고객 기반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어서 우수고객 의존도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수고객을 장기간 묶어두려는 백화점의 전략적 고심도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lucho@yna.co.kr
<연합뉴스>